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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Aug 19. 2020

만원지하철에서 거리두기

서울 따개비의 코로나 생존기

서울 2호선을 타고 출퇴근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대 2호선 열차는 정말 자주 오고. 열차 길이도 꽤 길다. 수송능력이 굉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이 매번 끝까지 찬다. 푸시맨은 없어진 지 오랜데, 그때는 서로가 서로의 푸시맨이 된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9호선, 1호선, 경기도민이 이용하는 광역버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어느덧 반년 넘게 듣고 있다. 요 며칠은 더 자주 들었다. 나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돌아다닐 일이 많은 직업이라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내 회사는 코로나로 인해 근무방식을 조정해줬지만, 예전부터 맴돌던 어떤 생각이 요즘 계속 떠올라서 끄적여보고 있다.


코로나가 하루빨리 잡혔으면 좋겠다. 생활방역에도 최대한 협조하고 싶다. 그런데 서울에서 살다 보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마스크를 끝까지 올려 써도 소용없을 것 같은, 달리는 밀폐밀접 시설에 어쩔 수 없이 매일 두 차례 몸을 실어야 하는 사람들이 이 도시엔 한가득이다. 거리두고 싶어도, 거리두면 짤린다.


그래서 가끔 억하심정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여기 이렇게 악착같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살게 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서울에서 공부하거나 일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 안해준다는 원리를, 구구단 9단 배우기도 전부터 가르친 사람들은 누구였나. 우리는 쪼개기원룸과 고시원에 사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여기 붙어있으라고 배웠다. 동네가 무너져가는 걸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지방 아이들은 더 뼈저리게 배웠을 테다.


생각해보면 사실 '서울'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좋은 학교 나와야 하고, 돈 많이 벌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게 하필 서울이길래 지금 천만명이 여기 모여 있을 뿐이다. '서울'이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서울이어야 할 '이유'가 더 중하지 않을까. 사람 천만명이 왜 따개비가 됐는지도 모르면서. 이런데도 누군가는 수도만 옮기면 이 모든 문제가 짠! 해결될 거라고 한다. 그 게으름에 화낼 기력도 없다 요즘은.


수많은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내일도 지하철과 버스를 가득 채울 것이다. 놀랄 것도 없다. 언제나 한계까지 사람을 채워 넣고선, 누가 압사하든 말든 어떻게든 굴러가게 하는, 그런 일에 우리는 터무니없이 익숙해졌지 않나. 사회적 거리두기. 지키고 싶고 지킬 거다. 그래도 서울 직장인에게 거리두기라는 워딩은 솔직히 좀 공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그냥 끄적여봤다. 이 난리가 지나가면 누군가 한번쯤 이 얘기도 꺼내 줬으면 좋겠다. 서울에 대해, 그리고 그 너머에 대해서.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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