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람기자의 긁적끄적 Nov 19. 2020

글은 당신처럼 써야 하는데

전진식 기자님께

때늦은 긴 장례를, 남몰래 치르는 중이다.

그는 기자였다. 나보다 한참 선배지만, 살아계셨다면 현장에서 못 마주칠 만한 연차도 아니었다. 그는 하필 또 내가 사랑하는 한 언론사에서 일했다. 내 어린아이 시절 그 신문은 할머니 방에 무릎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신문에서 만화랑 사진만 열심히 찾아 보던 아이는 어쩌다 기자가 됐다. 그래도 한참은 그를 몰랐다. 어느 날 인터넷에 그의 뒤늦은 부고가 올라왔다. 추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누구지? 찾아봤다. 그날로 나만의 긴 장례는 시작됐다. 질릴 때까지 그가 남긴 기사를 읽었고, 여전히 읽고 있다.

평범한 글은 아니다. 그의 글을 보면 "이렇게 써도 되나"하던 물음이 "이렇게 써야겠다"는 다짐으로 번진다. 그는 주간지에서 주로 활동했고, 나는 일간지에 있다. 호흡법이 다르다. 그래도, 그처럼 하고 싶다. 그는 깊이 잠수하고, 때를 기다렸다가, 한순간에 물보라를 튀기며 뛰어올랐다. 내가 읽은 그의 글은 대부분 그랬다. 그는 훌륭한 기자이면서 엄청난 글쟁이였다.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어린시절 좋아하던 블럭 집짓기놀이랑 글쓰는 일이 대충은 비슷하다고 생각한 때부터였다. 설익은 생각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일단은 기자에 닻을 내렸다. 그곳에서 믿을 만한 글쟁이를 만났다 싶었는데, 떠난 지 오래였다. 뒤늦게 알려진 부고보다 더 늦은 글을 민망하게도 적어본다. 그는 나를 영영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영영 알고 싶다.

"청포를 갓 베어낸 낫처럼" 시퍼렇게 살다 간 업계 선배, "날카로운 삶의 예각"에 찔려도 꾸준히 따뜻했을 사람, 전진식 기자님의 명복을 빈다.


(사진=아름다운재단)

매거진의 이전글 슬픔이 글이 되도록, 허락해준 분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