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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Nov 20. 2020

교과서 읽다 울던, 이모씨는 잘 지낼까

수능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얼굴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교과서를 펼치고 시를 읽던 60대 후반 만학도 이모씨는 이 한 줄을 읽자마자 후두둑, 하고 울었다. 때놓친 배움을 채우려 입학한 주부학교의 어느 한 교실이었다. 펼쳐든 책 속에서 이모씨는 수십 년 전의 당신을 만났다. 딸이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교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경험을 후두둑 울며 낭독했다.

몇십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소녀 시절이었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이모씨는 우연히 한문책을 구했다. 그 책을 어쩌다 얻었는지 수십년이나 지난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느낌은 지금도 또렷하다. 배우고 싶었다. 자신은 있었다. 동네에서도 '총명한 여자애'라는 얘기를 자주 듣던 이모씨였다.

소를 먹이러 다니며 이모씨는 매일 한문을 외웠다. 더도 덜도 말고 하루에 딱 여덟 자만 외우겠다고, 나름대로 스터디플랜도 세웠다. 하지만 상급학교에 가지는 못했다. "그땐 딸은 농사만 짓다가 시집 가면 끝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시대 상황이 그랬으니까. 언젠가는 공부를 꼭 하겠다는 마음만 품고 살았어요."

순해빠진 이모씨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대신 남동생 뒷바라지를 했다. 고등학생 남동생이 학업 때문에 대구에서 자취를 하게 됐다. 집안의 미래를 짊어진 남자 동생을 먹이고 재워야 한다는 이유로 이모씨는 그 뒤를 따라왔다. 강제였다.


순해빠진 이모씨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방바닥을 열심히 닦고 보리쌀을 얹히고 있으면, 국어 교과서를 읽는 남동생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남동생의 웅크린 어깨 너머 교과서를 이모씨는 수십 년 동안 부러워했다. 꾹 참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수십 년. 자식들을 어엿한 성인으로 길러냈다.


숨을 돌리고 보니 얄궂게도 그때 그 교과서가 생각났다. 동네의 이름난 평생교육시설에 등록했다. 전국팔도의 이모씨들이 모여 있었다. 이마에 맺힌 한을 서로 닦아주며 이모씨들은, 이모씨는 열심히 학교에 다녔다.


어느 날 국어시간, 선생님이 이모씨에게 낭독을 주문했다. 수십 명 가득한 교실 안에서, 이모씨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던 소녀들 앞에서, 이모씨는 한과 송이와 의와 국화꽃을 천천히 소리 내 읽어내려갔다. 소쩍새 소리처럼 굵은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모씨를 만난 게 어느덧 작년이다. 수능이 끝난 직후였다. 첫 회사에 입사해 어리버리하게 취재하던 쌩초보 기자와, 산전수전 다 겪은 20학번 예비 대학생은 그때 만났다. 이모씨는 자기 같은 사람들 돕고 싶다며 복지 관련 학과에 지원했고, 수능을 쳤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19가 터질 줄 누구도 모르던 때였다.

이모씨는 잘 지낼까. 온라인수업은 잘 듣고 있을까. 선배들하고 잘 지내보고 싶다 했는데. 노트북 앞에 주구장창 앉아 있는 게 좀이 쑤시진 않을런지 모르겠다. 수능이 다가오면 이모씨가 생각난다. 당신이라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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