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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Jan 13. 2021

이 시국의 눈사람

화를 내는 눈사람은 없다


폭설이 풀풀 내렸고 골목마다 눈사람이 피었다. 온라인엔 이동네 저동네 사람들이 만든 눈사람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어젯밤 눈사람 두 개가 생겼다. 하나는 책상에 올려둠직한 아담한 크기였다. 난간 위에서 느긋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세워놓은 쌀자루만큼 덩치가 컸다. 크기에 맞는 나뭇가지 팔을 구하기 어려웠는지, 500ml 플라스틱 병을 주워다 만든 양팔이 귀여웠다. 흐뭇해져서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어줬다.



눈사람은 어딜 가나 비슷한 생김새다. 둥글둥글한 얼굴과 뚱뚱한 배. 하늘을 향해 치켜든 두 팔. 주변의 자연물을 주워다 만든 순박한 표정 등. 재료와 덩치는 제각각이더라도, 크게 보면 서로 닮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공통점. 모두 웃고 있다. 화를 내는 눈사람은 없다. 얼굴이 없는 눈사람도 있지만 일단 표정이 있다면 모두 웃상이다. 뭐가 좋은지 실실대고 있는 이 새하얀 뚱보들과 눈이 마주치면, 도리가 없다. 피식 하며 웃을 수밖에.


만드는 과정을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눈 온다!"며 불러낸 동네 친구랑 깔깔거리며 만들었을지. "나가자~"며 조르고 졸라 엄마아빠랑 함께 나온 꼬마가 고사리손으로 열심히 빚었을지. 퇴근길에 왠지 센치해져서 아담하게 하나 만들어보고 웃으며 SNS에 사진을 올렸을지. 이런 상상을 이어가다 보면 또 공통점 하나를 찾는다. 화를 내는 눈사람이 없는 것처럼,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들도 화를 내지 않는다. 일그러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눈사람을 만드는 광경을 나는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다.



재난이 일상이다. 요 며칠 내린 폭설은 사실 게릴라성 집중호우나 다름없는 기후재난이었다. 지독한 전염병은 1년 넘게 온 세상을 괴롭히고 있다. 일상도 재난이다. 일하다 죽고, 배고파 죽고, 맞아 죽고, 집 아닌 집에서 추워 죽고, 말하지 못할 온갖 슬픔에 스스로 삶을 끊는다. 피라미드의 밑부분은 꾸준히 넓어지는데, 윗부분만 툭 분리돼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사람이 벌려놓은 격차에 자연이 재난을 꽂으니 온통 무너지는 비명뿐이다.


그런 시국에도 눈사람이 곳곳에 핀다. 행복이 오래된 거짓말처럼 느껴지고, 기쁨이란 단어를 발음하면 모래맛이 느껴지는 이 시절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새하얀 눈밭에서 눈덩이를 굴리며 웃는다. 그렇게 태어난 뚱뚱한 눈사람들이 골목마다 지키고 서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건넨다. 눈사람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속 서랍에도 눈사람 같은 선함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우리는 이 시국에도 웃을 줄 알고, 남에게 웃음을 선물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니까, 이 추운 날씨도 언젠가는 풀릴 것이라고.



(대문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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