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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Mar 05. 2021

시시하면 뭐 어때

대충살자 시골 똥개처럼


"우리 마음 속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카프카는 그런 책만 읽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를 물어뜯거나 찌르는, 고통을 가져다주는 재앙 같은 책만 읽어야 한다고. 내면의 무언가를 쩌억 하고 갈라버리는 그런.


책만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닐 테다. 음악이든 영화든 사진이든 뭐든, 내 세계를 온통 뒤흔들어 놓지 못하는 것들은 아무래도 얼마쯤 시시하긴 하다. 정말로 어떤 작품들은 시시하다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설 틈조차 주지 않곤 하니까. 무릎을 치며 이런 말들을 읽다 보면, 삶에 명작만 채워도 충분할 것 같은 마음도 든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한다. 나는 시시한 뭔가에 마음을 뺏긴 적이 한 번도 없었나? 그럴 리 없지. 시골 똥개처럼 좋은 건 뭐든 쫄레쫄레 따라가버리는 삶에 가까웠으니...


몇 년 전에는 한 일본 대중드라마에 푹 빠졌었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로맨스코미디였다. 아주 통속적이고 뻔하고 보수적이었다. 에피소드 하나가 끝날 때마다 강박적으로 교훈을 주려 하는 전형적인 일본 대중드라마. 심지어 제목도 엄청 유치하다. 그 드라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는커녕 생채기도 내기 힘들 도끼였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평생 간절히 원하던 회사에 들어갔지만, 자신이 꿈꾼 자리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완전히 반대되는 일을 했다. 그때 내 삶이 정확히 그랬다. 글을 쓰며 살고 싶어서 비정규직으로나마 원하던 직업을 얻었지만 한 몇 달은 내가 상상하던 일과 다른, 아니 아예 대척된 일을 하고 있었다. 글쓰기를 귀해하면서 살았는데, 거기선 끔찍한 글만 써야 했다. 내 이름으로.


그때 나는 주변 사람을 거의 돌보지 못했다. 내 삶을 돌볼 수가 없어서 그랬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의 말과 경험에도 제대로 공감해주지 못했고, 퇴근 후에 나만의 생기를 되찾으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소속이 동앗줄이라, 버티면서 회사와 집을 의무적으로 오가기만 했다. 마음이 어떤 박자로도 뛰지 않는 날들이었다.


그런 날에 그 드라마를 만났다. 원치 않는 답답함에 짓눌리면서도, 특별한 내 삶이 어딘가에는 준비돼 있을 거라 믿고선, 최대한 웃으며 한발한발 나아가는, 유치하고 통속적인 그 주인공에게 위로받았다. 그래 역시 대책없이 명랑한 건 싫어. 그늘을 아는 명랑함이 진짜로 좋지. 낙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말을 이해하는 그런 명랑함이. 그 드라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보다는, 얼어붙은 내 해수면을 천천히 덥혀 줬다.


내가 좋아하는 게 아무리 시시해도 그걸 좋아하는 내 마음은 시시하지 않겠지. 그때 나는 언젠가 내 진짜 삶이 올 거라 애써 믿었고, 그 믿음은 사실 모든 명작과 고전이 우리에게 계속 들려준 이야기이니. 시시하든 위대하든 좋아하면 충분하겠지. 마음을 떨게 한 모든 걸 열심히 아끼면 되겠지. 글을 쓰고 음악을 들어야지. 좋은 걸 더 많이 보고 좋은 곳에 더 많이 가봐야지. 시골 똥개 레벨을 못 넘어가도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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