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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Mar 08. 2021

개가 보는 풍경을 찍어라

사진이 좋은 이유

사진에 마음을 뺏긴 지는 꽤 오래됐다. 본격적인 취미로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다. 그 사이의 시간에, 적당한 거리를 두며 막연히 사진을 애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학부 막학기쯤? 대충 그랬다.


"개의 눈에 보이는 풍경을 찍어 와라." 오롯이 사진을 향한 관심만으로 들었던 교양과목에서 교수가 한 말이다. 우리한테 과제를 낸 건 아니었다. 본인이 사진 전공자들에게 시킨다는 첫 과제를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교수는 덧붙였다. "사람 눈높이에서 찍은 사진은 재미없다. 사물을 낯설게 보고, 평소와는 전혀 다른 앵글에서 찍어보는 게 시작이다." 납작 엎드려서 개의 시선을 담아오라는 뜻이었겠다. 생기발랄한 1~2학년들 사이에 짐짝처럼 홀로 놓여 있던 고학번(나)은 그 말을 듣고 머리에 뭔가 퍼뜩, 하고 스쳤다.


수습기자 시절 회사 창간기획에 발을 얹은 적이 있었다. 내가 인터뷰한 인터뷰이의 사진을 찍으러 사진부 선배가 왔다. 선배는 장소를 고르는 데만 한 시간을 썼다. 고르고 고른 장소에서 선배는, 입고 온 옷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덜컥 길바닥에 드러누워 인터뷰이를 찍었다. 그 성실함에 나는 반했다. 그때 찍은 사진이 이거다. 로우 앵글. 밑에서 올려다보며 인물을 강조하는 사진 기법이다.



사진은 빛을 다루는 작업이라고 한다. 찰나를 영원에 새기는 일이라고 한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유명한 말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말들에 앞서 내게 사진이란, '늘 똑같던 것을 새롭게 보려는 태도'다. 각도를 달리하면 다르게 보인다. 늘 보던 의자가, 지나치곤 하던 간판이, 걷기에만 바빴던 거리가 달라진다. 다른 모습까지 알았을 때 그 대상을 더 깊게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사진을 찍는 건 만물을 겸손하게 사랑하는 마음이자, 지루한 일상에 소금을 내던지는 용감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펜기자인 나지만 내 기사에 쓰일 사진을 허투루 고를 순 없게 됐다. 기사 입력 시스템에 올라온 사진을 펼쳐두고 오래 고민한다. 아직은 조잡한 실력이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웬만한 건 직접 찍으려 한다. 폰카로 찍었다면 꼭 보정한다. 만약 정말정말 좋은 사진이 필요한 취재인데 내 능력으로 부족하다면 사진부에 요청한다. 전문가의 영역은 존중해야 한다. 예컨대 이런 사진. 선배가 찍어줬다.



사는 게 지루할 때면 아예 아주 허황된 꿈을 꿔서 색채를 더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꿈 목록이 다이소 영수증처럼 길어졌다는 부작용이 생겼지만. 지금 내 꿈 가운데 하나는 매그넘에 가입해서 퓰리처상을 받는 것이다.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어차피 꿈은 지도가 아니라 나침반 같은 거라고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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