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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Apr 06. 2021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내 글이 나를 알겠느냐

나의 풍부는 어디에

브런치는 키워드별로 글을 나눠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글쓰기'와 '에세이' 칸이 내가 주로 찾는 단골집이다. 잠 안 오거나 일하기 싫을 때(...) 저 두 칸을 들락거리며 올라온 글을 훑는다. 취향에 맞는 글을 만나면 구독꾹도 잊지 않는다.


푹 빠져 읽다가 구독까지 눌러버린 글들엔 어떤 공통점이 있었을까. 우선 에세이 형식을 좋아한다. 리뷰나 여행기, 시사 같은 정보전달보다는 담담한 수필의 톤이 좋다. 다른 글도 좋지만 브런치라는 플랫폼 안에서는 그런 글에 눈이 간다. 필력의 영역에서 보자면 나는 건조한 문체보단 우유체에 끌리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표현력에 마음을 뺏기는 편이다.


그 중 가장 뚜렷한 공통점은 역시 '자기 얘기'다. 내가 좋아한 글들은 대개 자기 체험을 수필로 부드럽게 풀어낸 글들이었다. 그리고 그 체험은 예쁘지 않다. 그늘지고 춥고 아프다. 가슴 밑바닥 어딘가에 푹 가라앉아 있는, 풀리지 않는 검은 실타래를, 손가락 끝으로 조금씩 뱉어내는 글. 내가 나를 견뎌보려고 밤을 꾹꾹대며 쓴 글. 그런 글은 활자 사이사이에 글쓴이의 체취가 묻어 있다. 필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런 냄새가 안 나면 밥 반공기만 먹은 것처럼 아쉽다.


글을 '진짜로' 잘 써보고 싶어서 이런저런 공부를 하고 있다. 브런치 탐방도 그 일환이다. 틈틈이 브런치를 훑다가 앞서 말한 '풍부한 글'들을 마주치면 내 글이 참 뭐랄까, 밋밋하달까. 대충 그럴듯하게 꾸밀 줄은 알지만 여전히 내 얘기를 잘 꺼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반찬만 있고 밥이 없다. 그나마 내온 반찬도 시들시들하거나 조미료·색소로 범벅칠한 느낌?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한다고 이태준은 말했다. 내 얘기라는 게 별로 없는 건지, 있는데 발견을 못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때로는 그걸 알고 쓰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어쨌거나 "글 진짜로 잘 써보겠다"는 다짐을 이루려면 내 풍부를 잘 챙겨야 할 텐데, 하루하루가 이렇게 납작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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