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람기자의 긁적끄적 Apr 09. 2021

마들렌과 달고나

단골만들기


내 '단골 카페'는 두 곳이다. 한 곳은 집 바로 앞에 있는 자그마한 개인 카페다. 테이블 10개가 놓여 있고 층고가 높아 아늑하다. 회색과 나무색으로 인테리어를 해서 시야에 거스름이 없다. 음악도 적당한 볼륨으로, 그리 시끄럽지 않은 가벼운 팝을 틀어준다. 언제 가도 한적한 느낌을 주는 곳. 따뜻한 날의 테라스 테이블이 별미인 데다 화장실도 쾌적하다. 읽을 때, 쓸 때, 쉴 때, 재택근무하다 답답할 때 자주 찾는다.


다른 카페는 회사 근처에 있다. 여긴 테이크아웃만 한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정수기에서 커피를 뽑나" 싶은 스피드다. 사장님 혼자 일하는데 1분도 안 걸려 커피가 땋 나온다. 직장인 대상 장사의 극의를 깨우친 자의 무공이다. 술잔이 식기 전에 화웅을 벤 관우처럼 영수증이 식기 전에 주문을 처리하는 그분의 뒷모습에서 신검합일을 넘어선 '신컾합일'을 읽는다. 점심시간의 그분은 그야말로 만인지적이다.


 근처와 회사 근처. 일하기 편한 곳과 출근길에 커피 빨리 내주는 . 확실히 좋은 조건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카페의 주변에 있는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도  편안하다.  번째 카페는 빠르지만 나는  속도에 뒤지지 않는 광화문 일대 카페를  알고 있다(많지는 않다).


다만 다른 카페와 달리, 저 두 카페 사장님들은 늘 꼬물꼬물 뭔가를 새로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첫 카페 사장님은 언제부터인지 작은 오븐을 사서 빵을 굽기 시작했다. 한가한 시간대에 가면 "한 번 시도해봤는데 잘 구워졌는지 봐달라"며 빵 한 덩이를 주기도 하고, 마들렌이 잘 됐다며 하나 얹어주기도 한다. 그 카페의 몇몇 메뉴는 그런 과정을 통해 태어났을 테다. 전에는 없던 메뉴가 가끔 손글씨로 메뉴판에 적히곤 한다.


두 번째 카페도 만만찮다. 사장님은 달고나를 잔뜩 굽고, 그를 이용해 음료도 만든다. 새 음료가 IT 스타트업 출범하듯 자주 생겨난다. 과일청 담그는 일에도 자신이 있으신지 직접 담근 과일청을 팔기도 한다(여기까지 쓰면 아는 분은 눈치챌지도). 그 정성에 마음이 가서 선물용으로 과일청을 산 적도 있다. 그 카페는 남들보다 일찍 열고 일찍 닫는 편인데, 퇴근 후에도 계속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나 보다.


있는 메뉴만 팔아도 됐을 텐데, 뭔가를 계속 해보는 사람들. 하던 대로 하면 될 텐데 굳이 한 발 더 나가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만든 작품에는 무엇도 '그냥' 한 게 없다. 결과물이 소소해도 그 속은 치열하다. 그런 정성에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힘이 있다.


때로 그런 글을 만나기도 한다. 조사 하나에도 정성을 넣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이 자음은 그냥 고른 자음이 아니고, 이 술어는 그냥 붙인 술어가 아니구나, 하는 글을 그들은 쓴다. 예컨대 해에 따뜻을, 새벽에 온다를, 강에 굽이친다를 붙이는 건 그들에게 '카페에선 아메리카노와 라떼만 팔면 된다'는 말만큼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표현이 새롭지 않더라도 생각이 새로워버리면 못지않게 빛난다. 빛남을 보면 닮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읽기는 그 덕분에 재밌어지고 쓰기는 그 때문에 어려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내 글이 나를 알겠느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