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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Jun 21. 2021

지상에 소보로 하나

어떤 죽음 앞에 정치는 한없이 비루했다

세 살배기 아이는 고사리손으로 소보로빵을 뜯어 먹으며 말갛게 웃었다. 와, 나도 소보로빵 좋아해! 한입 크기로 뜯어 씹으면 촉촉한 빵과 바삭한 설탕덩어리가 어우러지는 맛이 아주 최고지. 다른 때였다면 그런 생각을 하며 마주 웃어줬을 것이다. 그날은 그럴 수 없었다. 아이를 마주친 곳은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작업을 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대학생 노동자 이선호씨의 빈소였고, 뛰놀던 아이는 이씨가 생전에 끔찍이 아꼈다던 조카다.


사고 후 한달. 아이는 여전히 삼촌의 죽음을 모른다. 이제 27개월 된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는 아직 어렵다. 대신 ‘꺄아’ 소리를 지르며 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 사이를 뛰어 가로지른다. ‘꺄아’가 지나간 자국 뒤로 무너진 일상의 풍경이 서서히 선명해졌다. 아버지 이재훈씨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공구 대신 펜을 들어 기자회견문을 쓴다. 속에 난 천불에 소주를 붓고서야 겨우 잠에 든다. 선호씨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장례식장 한켠에 칫솔을 쌓아두고 밤새 빈소를 지킨다. 평소라면 마주칠 일도 없었을 기자들을 만나 열심히 떠들고, 집회에 꼬박꼬박 따라나선다.



한달째 빈소를 돌보면서 그들은 무언가를 애써 지키고 있었다. 그걸 뭐라 불러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곳곳에 그것이 있었다. 예컨대 삼촌의 죽음을 모르는 조카에게 누군가 쥐여준 소보로빵 같은 것들. 또는 밤새 선호씨의 향을 지키는 “안쓰러운 남의 집 귀한 새끼들”을 위해 재훈씨가 밤마다 시켜주는 따끈한 탕수육 같은 것들. 힘들어하는 아버지 기운차리라고 선호씨 친구들이 때때로 건네는 사소한 농담들. 슬픔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이들만큼은 같은 죽음을 겪지 않게 하겠다’며 그들은 그렇게 애써 버틴다. 음식도, 농담도 어쩌면 그 긴 싸움을 견디는 한 방식이리라고 감히 추측만 할 뿐이다.


온 나라가 죽음의 일터다.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지켜야 할 것’을 안 지켜 사람이 죽는다. 그런 세상과 싸우는 평택 사람들을 곁에서 보며 생각했다. 지켜야 할 것만이라도 잘 지켜지는 나라였다면, 그래서 이들을 ‘투사’로 만든 사고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날 부두에 안전인력이 있었다면, 선호씨가 안전장구를 제대로 받았다면, 고용관계가 명확해 안전 책임도 분명한 사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선호씨는 그날 퇴근 후 아버지와 술 한잔 놓고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놀러가거나, 소보로빵을 사들고 조카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소보로빵을 조각조각 뜯어먹는 조카를 안고 흐뭇해했을 테다.


그 작은 소보로빵 하나 지켜주지 못한 정치가 그날따라 그렇게 비루해 보일 수 없었다. 빈소 로비엔 정치인들이 부랴부랴 보낸 조화만 철도 없이 한가득 피었다. 세 살배기 아이가 자라서 소보로빵만큼이나 맛있는 다른 빵들을 알게 될 때쯤 우리는 그 아이 앞에 어떤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일터에 나간 누군가의 삼촌이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옛날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항구를 때리는 파도처럼 반복되는 이 죽음이 도대체 언제쯤 멎을까.


(※제목은 현기영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 따왔습니다.)



 글은 <주간경향> 1431(2021.06.14)에도 실렸다. 브런치로 글을 옮겨오기 며칠 , 선호씨의 장례가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사고  59일이 지나서였다. 장례에서 아버지 이재훈씨는 "아이의 죽음이 잘못된 법령을 다시 고치는 초석이 됐다는 자부심으로 다시 살아가려 한다" 말했다. 두 달 만에 빈소를 나서는 아들의 관을 붙잡고 그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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