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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Aug 27. 2021

가제와 랍스터, 그리고 개탄러

진짜 재수 없는 어른들

“스무 살이 되니까 갑자기 온 세상이 저보고 책을 읽으래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A씨는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화의 화제가 글쓰기와 글 읽기로 넘어갔을 때였다. 책 읽을 짬 없이 공부만 시키던 학창시절을 지나니 뜬금없이 ‘책 권하는 사회’가 펼쳐져 부담스럽다고 했다.


경향신문 일러스트(김상민 기자)

A씨가 느꼈을 황당함에 공감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문해력을 다룬 기사마다 달리는 단골 댓글이 떠오른다. “책을 안 읽어서 그래”, “세줄 요약만 원하니 그렇지”, “유튜브 그만 보고 책 좀 봐라”…. 몇달 전 학생들이 ‘가제’를 ‘가재’로 잘못 이해하는 방송 장면이 온라인에 퍼진 뒤로 더 자주 보인다. 단편적인 스크린샷으로는 방송 맥락을 충분히 담지 못했지만 개탄은 번개탄에 불붙듯 확 타올랐다.


‘오호통재라!’ 대대로 지켜온 이 나라의 지성은 이리도 허무하게 몰락하는 것일까? 세종대왕의 빛나는 업적은 이대로 잊히는 걸까? 만약 그런 날이 오더라도, 진짜 책임은 오히려 저 ‘개탄러’ 어른들에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A씨 말처럼 한국은 스무 살이 되기 몇년 동안 책을 권하지 않는 사회다. 모든 시계가 대학입시에 맞춰진 교실에서, 수치와 효율의 언어를 떠나 오롯이 즐기는 독서란 곧 사치다. 책장은 살랑살랑이 아니라 후딱후딱 넘어가야 한다. 2019년 기준으로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았다’는 응답은 초등학생이 4.2%, 중학생이 8%, 고등학생이 11.6%로 입시에 가까워질수록 높아진다. ‘차분히 재밌게 읽어봐’ 대신 ‘지문 1개를 몇분 안에 풀어야 한다’는 말을 들려주기로 한 건 어른들이었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고 그깟 ‘가제’ 뜻 좀 모른다고 개탄하다니, 어른들도 조금 너무하지 싶다. 통탄하는 어른들 틈에서, 공부 좀 하라는 윽박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점점 위축된다. 책꽂이 앞 양극화에 책임을 느끼는 대신 혀만 끌끌 차고 있는 어른들이 참 못나 보인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떠나면 윽박은 더 교묘해진다. 기업들은 ‘인문학 마케팅’, ‘교양 마케팅’으로 불안을 부추긴다. 나도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이나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하나라도 더 쌓지 않으면 ‘21세기 융합형 인재’의 행렬에서 탈락할 것 같다. 서두에서 A씨가 토로한 황당함도 이와 멀지 않을 것이다.


능력주의를 오래 연구해온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한국사회에서 교양이 입신양명과 지위경쟁의 도구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독서와 교양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구별 짓기’와 ‘과시 열망’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가제와 랍스터를 조롱하는 말 뒤에도 이런 욕망이 꿈틀대고 있지 않을지 의문이다. 개탄은 능사가 아니다. 그래도 계속 개탄만 한다면 통계 하나를 더 보여드리고 싶다. 44.6%. 이 글 4번째 문단에 인용한 통계의 성인 연령대 응답이다.


 글은 <주간경향> 1441(2021.08.23)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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