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은데
사안과 얼마간 거리를 둬야 하는 직업이라고 배웠다. 한발짝 떨어져 중립적으로, 객관적으로 보고 쓰라고. 그래야 사실을 정확히 전할 수 있다고. 기자 일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렇게 알았고, 언론사에 막 입사한 뒤에는 그렇게 교육받았다.
일이 사람을 만드는 걸까. 요즘 나는 기자 일을 시작하기 전과 조금 달라진 내 모습이 종종 낯설 때가 있다. 아직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을 경력은 아니겠지만, 예전이라면 마음을 시큰하게 찔러댔을 일들에 얼마간 시큰둥해진 건 맞는 듯하다. 누군가 간절한 마음으로 눌러 적었을 제보를 읽으면서도 ‘이게 기사가 될 수 있을지’ 한발 물러나 이리저리 따져보게 된다. 사실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사건 하나하나가 당사자에겐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지만, 그 일이 기사가 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마음을 살피는 더듬이가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때로는 그 더듬이조차 펴기 어려운 순간도 생긴다. 짧은 시간 안에 바쁘게 취재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공감능력이 옅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한 번은 쪽방에서 혼자 살다 돌아가신 분의 사연을 쓴 일이 있었다. 집 관리인, 지원센터, 교회, 쪽방촌 이웃들…. 그를 알 만한 모든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고인과 20년 동안 알고 지냈다는 앞집 A씨를 특히 괴롭혔다. 불편해할 걸 알았지만 그의 마음을 열어야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수차례 찾아가 설득하니 입을 열었다. 싸구려 휴대전화에 저장된 고인의 사진을 보며 이런저런 기억을 꺼냈다. 그의 옆에서 함께 안타까워하면서, 뒤로는 이름과 숫자들을 몰래 외웠다.
‘일’로만 보면 나름 취재가 잘됐다. 마감을 하고 집에 오는 길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8평 방의 불을 끄고 누운 뒤에야 가슴께가 시큰해져왔다. 오늘 난 뭘 한 거지. 내 딴에는 사실을 캐낸답시고 누군가의 마음에 대고 곡괭이질을 한 것은 아닐까. 한발만 떨어져 있었어도 충분했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버렸나 싶었다. “겨우 다 잊어가는데 왜 찾아와 물어보느냐”던 A씨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세상에 알려야 할 이야기였다. 지금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기사를 쓰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그날 이불은 유독 무거웠다.
아무리 ‘거리 두기’를 하려 해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완전히 시큰둥해지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확실히 어떤 목소리들은 아무리 먼 거리도 훌쩍 뛰어넘어 마음을 시큰하게 찌른다. 금지된 잠수작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특성화고 학생, 상사들의 계속된 성추행에 세상을 등진 군인, 마지막으로 직원들 월급을 주고 세상을 떠난 호프집 사장님의 이야기 앞에 냉철한 관찰자로만 서 있을 수 있을까. 성별과 인종과 학벌과 지역이 갈라놓은 틈도 곳곳에서 깊다. 명백하게 기울어진 비탈이라면 때로는 중립을 이탈할 필요도 있겠지만, 중간에서 너무 멀어지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경험과 공부가 부족한 나는 매번 같은 골목에서 길을 잃는다.
시큰과 시큰둥 사이에서 기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애초에 답이라는 게 있는 질문일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 일은 시큰과 시큰둥 사이를 계속 진동해야 하는 직업인 것 같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사막 같은 인간이 돼버리지 않길 바랄 뿐인데, 그럴 수 있을까.
이 글은 <주간경향> 1450호(2021.11.01)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