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의 플레이리스트

어느 40대 여성의 덕질하는 하루

by 흔적작가


미친거다. 두 시간을 사뿐히 넘기고 곧 세 시간을 채우려고 한다. 그래 감자탕을 먹을 때도 마지막에 볶은밥의 누릉지를 박박 긁어 끝까지 먹는 나다. 아주 끝장을 보는구나. 새벽 2시가 다 되어 간다. 어쩔까. 봐버렸는걸. 무대에서 노래부르는 모습을. 춤추는 모습을. 인터뷰하는 모습을. 메이킹을. 화보집 촬영을. 역시 유튜브가 문제다. 날 가만히 두질 않아. 고맙게도 말이다.




원래아흔애니의 남자주인공 소염금의 이미지는 까칠하지만 순딩스러웠다. 모던하고 깔끔한 이미지였다. 근데 헉. 허, 미쳐. 블랙홀이다. 블랙홀 표면에 오면 시간이 멈출 정도로 블랙홀의 질량이 시간을 지연 시킨다고 한다. 그래 그러니 벌써 세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는 거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거지. 자꾸 다른 모습들이 나와 심장을 치는데 조절을 할 수 있겠냐고. 이 블랙홀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주위의 모든 것을 미래 속의 공간 영역에 가두는 것이 블랙홀이란다. 벗어나기 위해선 현재 방향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는데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으니 갇힐 수 밖에 없다. 그래 맞다. 갇혔다. 갇혀서 기분 나쁘냐고? 나쁘긴 좋다. 이 생기있는 맑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여줄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설거지에 쾡한 눈도. 아이에게 불을 내뿜는 눈도. 남편 뒤통수를 타버릴듯 바라보는 눈도 아닌. 초롱초롱한 말랑말랑한 이쁜 눈동자라니.



싹 쓸어 담고 있다. 화투장을? 돈을? 아니, 임언준과 관련 된 모든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담고 있다. 근데 이상하다. 도대체 이름이 몇 개인건지. 임언준, 린옌쥔, 린옌준, 에반 린. 당황한 나를 모른 척 해주길 바란다. 한참을 확인하고 확인한 후에 이 모든 이름이 한 사람이란걸 알아냈다. 그래 약간의 허들이 있어야 뿌듯해지지. 허들만으로는 심심했나. 보물찾기도 있다. 중국판 프로듀스 101에 출현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여기서 끝일까. 몇 년 전에 보았던 드라마의 OST를 부른 것을 알고는 '세상에나 뭐지'가 주문처럼 나왔다.




딸 아이가 수학공부를 하다 점에 대해 얘기한 것이 생각난다. 점은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는 도형이다. 그 점이 모여야 선이 되고, 그 선이 모여 면이 된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면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점들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그 면이 입체가 되어 사람들이 보게 된 것이다. 요행은 없다. 점을 찍지 않고는 선조차 그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나는 열심히 면을 만들기 위해 점을 찍고 있다. 어떤 면이냐고. 나의 감정에 충실해 지기위해 필요한 감정도형을 만들기 위한 면이다. 투명도 100%를 자랑하는 감정도형.




왜 투명도 100%냐고. 간단하다. 속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지내온 나를 1%라도 바꾸고 싶으니깐. 사람이 힘들고 무섭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나에 대해 말해주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모든 과정들이 어렵고 힘들고 무섭다. 친해지고 싶지만 친해지고 싶지 않기도 하다. 아, 참고로 타로카드를 보았었는데 은둔자와 여황제가 나왔었다. 극과 극인 카드다. 같이 있지만 순간순간 혼자있어야 하고, 혼자있지만 너무 외로워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나를 이것만큼 잘 표현한 카드가 있을까. 참 맞추기 힘든 사람이구나 나란 사람은.




아니, 잠깐만. 원래 100점자리 인간관계는 없잖아. 맞추는 것이 정말 필요한가. 플레이리스트에 여러 노래가 들어있듯이 나도 너도 하나로 정의 할 수 없잖아. 단 하나의 틀에 빡빡하게 맞추는 것은 오히려 죽이는 행동이 아닐까. 임언준이라는 폴더 안에 임언준의 노래가 있지만 정말 다양한 노래들이 있거든. 그래서 좋은건데. 아니, 단순한 선도 무수히 많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잖아. 여러 모습을 갖고 있는게 당연한거 맞잖아. 오히려 더 다양한 나를 찾아 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덕질말고 또 뭔가 일을 내야하는 분위기다. 아니면 덕질을 업그레이드 해야하는 분위기인가보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새로운 나를 넣어 보는 거다. 어쩌다 발견한 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도 내가 덕질을 할 줄 알았겠냐고. 부끄럽지. 왜냐면 부끄러워해야 될 것 같아서. 난 40대니깐. 아이도 있으니깐. 밥 벌어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자기계발이 아닌 것에 힘을 쏟으니깐. 남편의 눈빛이 날 무시할까봐. 아이 공부에 신경쓰지 못할 까봐. 까봐, 까봐, 까봐. 뭔 헛소리인지. 이젠 안다. 헛소리인걸.



노래 한 곡을 온전히 다 듣고 느끼듯이 새로운 내 모습을 어색하다고 밀어내지 말고 온전히 보고 들어 주면 좋겠다. 플레이리스트 안에 음악들은 한 사람이 불렀지만 자주 듣는 음악이 있고 좀 덜 듣는 음악도 있지 않나. 그냥 횟수의 문제일 수 있다. 새로 발견한 나를 자꾸 들여다 보면 이뻐보이고 대견스러워 보이고 멋져보일 수 있다. 아니, 어쩜 반전 매력으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순식간에 플레이리스트에 임언준이 부른 노래들이 찼다.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에 눈뜨자 마자 노래를 튼다. 운동하러 갈 때도 마트를 갈 때도 튼다.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거침없이 돌아가고 있다. 덕질하는 나를 발견해서 다행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는데로 점을 찍을 것이다. 나도 선을 긋고, 면을 만들 수 있다. 입체적 도형이 만들어 지면 좀 멋지겠지. 멋질테다.




나의 플레이리스트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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