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음흉한 엄마에게서 취향을 지켜라

어느 40대 여성의 덕질하는 하루

by 흔적작가



착각하지 말자. 아이는 소유물이 아니다. 내 속을 박박 긁어도 잔소리로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이젠 살살 유도해도 넘어오지 않는다. 당연한 거겠지. 언니가 되셨다는 거지. 그래, 손님이다. 귀한 손님.




넘어가지 말자. 엄마는 내 주인이 아니다. 내 맘을 전혀 알아주지 않아도 말대꾸하면 안 된다. 이젠 살살 피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당연하지 않다. 나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 내 인생이다. 내 인생.





인간의 욕심이란. 아니, 엄마라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방어선을 마련해도 스멀스멀 겁도 없이 올라온다. 처음은 언제나 가볍게 기분 좋게 시작된다. 하지만 욕심은 아이의 무언가를 앗아가려 한다. 부디 엄마 때문에 무언가 뺏기지 않기를 자기 것을 지켰으면 한다.




두근거리는 덕질로 꿀보이스 임언준의 노래를 듣는 시간이 늘어간다. 볼륨도 높이고 흥얼거리다 귀에 익숙한 부분에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덕심이 커질수록 음악이 차지하는 공간도 넓어진다. 안방과 화장실은 뭐 이미 기본 스테이지가 되었다. 주방으로 진출해 보니. 뭐, 별거 없더군. 살짝 볼륨 조절만 하면 된다. 어후, 설거지할 때 물소리와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어찌나 시끄러운지. 보통 레벨로는 안 들려. 당연히 볼륨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물론 설거지가 잔뜩 쌓여있을 때는 아이팟을 귀에 꽂아야지. 누구를 위해서냐고. 질문이 왜 그럴까. 당연히 나를 위해서지. 왜 주방은 거실과 가까운 걸까. 볼륨을 높일 수가 없잖아. 음표 하나 단어 하나 숨소리 하나 놓칠 수 없는 걸 모르나. 특히 라이브를 들을 때 다른 소리들은 접근금지다.



덕질의 기본은 노래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 것이 되려면 방법은 하나다. 듣고, 듣고, 듣고. 따라 부르고, 따라 부르고, 따라 부르고. 단어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한다. 삼위일체가 될 때까지. 임언준과 노래와 내가 말이다. 그런데 엄마인 나는, 주부인 나는, 일하는 나는 정말 시간이 막 많지는 않다고. 하, 뭘까. 이 찔리는 마음은. 아무튼 여유가 별로 없기에 들을 수 있을 때 들어야 한다. 시간 쪼개기 작전은 가장 좋은 전략이다. 마치 영어 공부를 위해 펼치던 모든 전략을 다 적용해야 한다. 아이에게 했던 모든 엄마표 영어공부 작전은 내게 유효할 것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루틴을 만드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특히 생각만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즉각 실행. 육아서와 자기 계발서를 읽은 보람이 있다. 12년의 육아 경력은 유효하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학생 때 공부를 이렇게 덕질하듯 했다면 인생 길이 조금 달라졌을 거다. 동기부여, 자기 주도, 반복학습, 환경설정, 결단력, 행동력 딱이다. 공부를 위한 조건.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시고 불교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듯이. 덕질을 통해 삶과 공부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나라 사람을 덕질하다 보면 새로운 언어에 관심이 생기고 짧은 문장 하나라도 배울 수 있다. 유창하게 그 나라 언어를 하지 못하면 좀 어때. 문화를 배우고 이해를 하고 그 안에서 적용할 점을 찾아낼 텐데. 그러니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나올 수밖에 없다. 어떤 생각일까. 난 엄마고 아이가 있다. 언어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엄마. 기회가 오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툭툭 아이 앞에 하나 둘 던져 놓고 걸려들길 바라는 그런 약간은 음흉한 엄마. 아, 가끔 내가 놓은 그물에 당하기도 하지만 가벼운 에피소드일 뿐이다. 자, 좋은 건 함께 나누고 적용하는 것이다. 중학교에 올라가면 중국어를 하니깐. 제2 언어가 필요할 테니깐. 그렇지 살짝 빠뜨려보자. 중국어라는 바다로.





아이를 위한 음흉 엄마표 중국어 플랜 3단계


음흉 1단계. 언어 습득의 기본은 흘려듣기다. 무릇 언어란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내 것으로 만들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엄마는 기억한다. 중국어에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임언준 노래를 튼다. 사실 계속 틀어져 있긴 하다. 한 곡 듣기와 여러 곡 듣기를 같이한다. 가끔씩 분위기 전환을 위해 다른 가수의 노래도 들려준다. 아주 살짝만. 엄마는 임언준 덕질 중이니깐.
음흉 2단계. 언어 습득의 필수는 영상 노출이다. 어떤 상황에서 하는 말인지 알기 위해 영상 노출은 필수. 아쉽게도 집에 중국어 DVD가 없다. 하지만 웨이브가 있지. 곧장 웨이브 중국 드라마로 들어간다. 아이에게 최신 드라마를 보여주고 보고 싶은 것을 고르게 해 준다. 혹시 첫 드라마가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파도를 타다 보면 느낌적으로 필이 오는 것이 있을 것이다. 판다지라. 고르는 센스 역시 좋다. 판다지라면 아이의 흥미를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 딱 판타지물을 좋아할 나이이니깐. 나 또한 판타지를 좋아한다.
음흉 3단계. 언어 습득의 꽃봉오리는 집중 듣기. 바로 청독이다. 들으면서 책을 눈으로 읽는 것. 아, 아직 중국어 책은 준비를 못했다. 좀 빠른 느낌이니 천천히 책을 찾아보기로 한다. 대신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같이 있는 한 문장 읽기를 해보기로 한다.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을 한다.




우선, 3단계를 진행해 보기로 한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플레이 리스트에서 'You Are So Beautiful'이 흘러나온다. 임언준의 목소리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역시 노래만으로는 부족하다. 뮤직비디오를 찾아본다. 심장 떨리게 그렇게 웃으면 어쩌나요. 저 분홍 폴라로이드에 찍힌 사람이 되고 픈 이맘. 하하하. Love is so beautiful beautiful~. 오늘은 인터뷰 영상도 찾아봐야겠다. 보조개가 웃는 모습을 더없이 아름답게 만든다. 에너지 충전 완료. 자 그럼 플랜을 시작해 보자. 처음이니 가볍게 쉽게 해야 한다. 언어는 장기전이니깐. 심지어 제2 외국어니깐.






아이를 위한 음흉 엄마표 중국어 플랜 중간점검



음흉 1단계. 흘려듣기 망했다. 중국어를 배우고 있던 아이라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없다. 관심 같은 것은. 평일에는 서로 바빠 주말을 공략했으나. 한 곡을 들을까 말까다. 본인의 귀에 일본노래가 나오는 아이팟을 끼고 주구장창 그림만 그린다. 까궁일 때는 쉬었는데. 언니가 돼 가는 아이는 본인의 취향 노래를 들어야 한단다.
음흉 2단계. 영상노출 망했다. 첫 번째 드라마는 1화 보고 재미없어서 체인지. 두 번째는 판타지로 결정하고 2회 정도 보았다. 하지만 본인 스타일이 아니란다. 우씨 판타지 좋다며 적어도 4회~5회는 봐야지. 스토리란 것이 있다고. 모르나 스토리. 난 재미만 있구먼. 창란결이었다고. 창란결. 결국 나 혼자 봤다. 역시 몰 모르 때 했어야 했어.
음흉 3단계. 딱 첫 장만 했다. 맞다. 그거다. 말하기도 아니, 쓰기도 민망하다. 쓰디쓴 맛이다. 아, 그래도 중국어 발음은 좀 좋았던 것 같다. 위로가 필요해요.




뭘까. 진짜 영어는 이렇게 어렵지 않았다고. 진짜 뭐지. 잠깐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며 칠 뒤에 깨달았다. 나의 치명적 실수를 말이다. 아이는 까꿍이가 아니다. 10대다. 내가 100% 끌고 갈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 그래서 뭘 모를 때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거다. 나이가 차면 본인의 취향이 있어 진짜 동기가 없으면 어렵다. 임언준 덕후를 만들 수도 없고 심란하네. 또 준비 없이 시작한 것이 실수다. 영어처럼 아이 수준에 맞는 것으로 준비하고 진행했어야 하는데. 인정하자. 완벽한 나의 실수다. 해리포터와 마블은 보면서 쳇. 아, 스토리가 너무 드라마였나. 봐라 곧 드라마에 미칠 날이 있을 거다. 마지막은 나의 실행력 부족이다. 큐알코드 찍으면 할 수 있는 것을 안 했으니 말이다. 닫자.




당분간 중국어는 중국어선생님께 맡기고, 나는 내 덕질이나 해야겠다. 너도 언젠가 덕질을 하겠지. 그때를 기다리마 딸아. 우선 영어나 다시 점검하자. 그래도 너의 취향이 생겨 엄만 좋다. 엄마의 음흉한 욕심이 너의 즐거움을 빼앗지 않아 다행이다. 엄마에게서 너를 잘 지켜서 기특하다. 마지막으로 한 곡 반복의 힘으로 원래아흔애니의 가사가 귀에 들어온다던 너의 그 한 마디. 어이없어하면서 웃던 그 한 마디에 조금 희망을 걸어본다. 엄마에게서 지키고 싶은 취향이 있으면 꼭 지켜내거라. 딱 한 뼘 다른 것을 맛볼 빈틈은 두고서 알았지 딸. 원래아흔애니.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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