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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Nov 18. 2024

see : 낙엽비, 감정충전

일상 그리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


감정을 느끼려면
‘보다’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 나는 무엇을 보면서 살고 있나?


주말에 비가 온 뒤 날씨가 추워졌다.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고 오전 운동을 하기 위해 집에서 나왔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닿아 놀랐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차가운 바람을 피하기 위해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가버렸다. 아쉽다. 가을바람을 좋아하는 데. 벌써 가버리다니. 아니다. 어쩌면 겨울이 오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올지도 모른다. 가을바람은 그렇게 매정하지 않다.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가을바람을 좋아하는 것을. 더울 때는 언제 오나 기다리고, 가을에는 좀 더 천천히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러니 기다려봐야겠다.



다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나뭇가지 끝에서 낙엽비가 내리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비를 따라 시선도 떨어진다. 비를 맞아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낙엽이 보였다. 마음이 이상했다. 낙엽을 밟고 있는 지금이 반가우면서도 쓸쓸한 마음이 든다. 사람들은 비를 맞아서 떨어진 낙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낙엽이 반가울까. 아니면 쓸쓸한 마음이 들까. 어쩌면 반가우면서도 쓸쓸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다. 나처럼. 혹은 나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더 이상 차가운 바람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걷는 걸음이 느려졌다. 걸으면서 하늘을 보던 눈은 발아래에 있는 낙엽을 보고 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때와는 다른 색감을 가지고 있다. 색이 진하다. 그 진함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멈춰버린 걸음. 그리고 본다. 빗물에 젖에 있는 낙엽들을. 천천히.




‘보다’라는 단어는 복잡하지 않다. 눈으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아는 것이며, 대상을 즐기거나 감상하는 것이 ‘보다’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을 보는 것. 비에 젖어 바닥에 붙어있는 낙엽을 보는 것. 모두 보는 것이다. 그리 어렵지 않은 행동이다. 보는 순간 형태적 특징이 들어온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행동들이다. 하지만 그 뒤부터 ‘보다’는 전혀 단순하지 않은 감정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비에 젖은 낙엽을 보며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감정이란 무언가를 봐야지만 생기는 것이다. 길을 가다 바람에 떨어져 있는 낙엽을 보지 않았다면 반가움과 쓸쓸함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어떤 것을 보고 있을까? 무뎌지는 감정을 탓할게 아니었다. 감정의 폭을 넓고 깊게 만들기를 원하면서 나는 ‘보다 ‘에 무신경했다. 가을이 떠나는 계절이 돼서야 보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다니. 아니다, 이제라도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볼까? 무엇을 보고 싶을까? 나는.



우선, 미술관에 가봐야겠다. 다음은 첼로 공연에 가보고 싶다. 또, 겨울바다. 이번 겨울이 끝나기 전에 세 가지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술관은 12월이 가기 전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첼로 연주회는 일단 공연을 찾아봐야겠다. 겨울바다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3개월이라는 시간이 있다. 그 안에 가면 된다. 이제 혼자 가느냐, 아니면 누군가와 같이 가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혼자보다는 같이 가는 것이 좋겠다. 미술관, 첼로 공연, 겨울바다. 보고 싶은 것들을 보고 나면 어떤 감정들이 생길까.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낙엽을 볼 때보다 조금 넓고 깊어진 감정이 나올까. 아마 처음부터 깊어진 감정을 기대하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보다‘라는 행동을 하다 보면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감정의 깊이를 가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가을바람이 떠나고 겨울바람이 오는 이 계절에 할 일이 생겼다. 부디 춥다는 핑계로 이번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보다’라는 행동으로 감정을 충전했으면 좋겠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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