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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Nov 25. 2024

feel : 우울, 그림

일상 그리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



우울이라는 감정은
예고도 없이 온다.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넘기려 했다.



영어 필사를 시작했다. 오늘이 첫날이다. 영문캘리 선생님이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해주셨다. 우선 일주일 동안 해보고 괜찮으면 계속해 보자고 했지만, 꾸준히 하고 싶어서 책을 샀다. ‘DAY1’을 펼치고 영어문장과 해석을 대충 읽어보았다. 감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제 다시 영어문장을 눈으로 읽어가면서 천천히 글을 써내려 갔다. 마지막 영어문장 필사를 끝내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 필사한 옆에 단어장을 만들었다. 그 후, 영어문장과 비교해 보며 해석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러다 마지막 문장에서 멈췄다.


That’s why finding healthy ways to deal with our emotions is key. _ 그래서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을 찾는 게 정말 중요해요.
  [감정 수업 영어 필사 100일의 기적] 넥서스 출판 / 퍼포먼스 코치 리아 지음  



일요일 저녁. 우울함 때문에 감정소모가 너무 심했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예고도 없이 온다. 이런 우울은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끝내야 하는 일이 있었지만, 마음이 무거워 늦은 새벽까지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몇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책상 앞에 올 수 있었다. 마음을 잡고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또 일을 하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참 이상하다. 시간은 흘려가지만 우울은 흘러가지 못하고 가슴에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른다고 우울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가슴 깊은 곳 그 어딘가로 내려앉아 얼굴을 숨기고 조용히 있을 뿐이다.



숨어있던 우울이 다시 얼굴을 들고 나온 건. 마지막 영어필사 문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제의 우울과는 조금 다른 우울이었다. 감정을 소모시켜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우울이 아니었다. 감정에 다쳐 아파하는. 그래서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우울이었다. 책의 문장처럼 이 우울이라는 감정을 조금 건강하게 토닥여 보고 싶어졌다. 너는 나를 힘들게 만드는 우울이 아니라. 나 지금 아파, 그러니깐 작은 위로라도 해줘.라고 말하는 우울이야. 이렇게 생각하니 진짜 우울이 안쓰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쩜 이 우울이라는 감정은 나의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울이라는 감정도 자기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토닥에 달라는 상처받은 아이일 수 있는 것이다.


조용히 그림그리기~


그래서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작은 크기의 블랙종이를 꺼냈다. 아껴두고 아껴두었던 종이다. 그러니 온전히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어떤 것을 그릴까 하다가 선인장을 그리기로 했다. 선인장 하나를 오일파스텔로 그리기 시작했다. 물을 머금고 있어 통통한 몸통을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변한 가시를 그렸다. 그리고 화려한 색의 선인장 꽃을 잊지 않았다. 나도 너처럼 언젠가 화려한 꽃을 피우고 싶어.라고 말을 걸면서. 우울한 감정이 들 때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그린 그림이 곧 나이기에 마음이 간다. 그림을 보면서 내 마음이 지금 저렇구나. 힘들었겠네. 그래도 잘 버티고 있네. 진짜 선인장의 꽃처럼 언젠가는 화려하고 예쁜 꽃을 피울 거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선인장 그림을 한 참 동안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결국, 우울은 조용해지고 선인장 그림을 보면서 웃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좀 민망하지만 딸에게 쪼르르 달려가 선인장 그림을 보여주며 “이 선인장 너무 귀엽지?”라고 묻고 있는 나도 만난다. 감정이란 정말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특히 우울이라는 감정은 더더욱. 내일 또다시 우울이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우울에 빠져 매번 감정 소비만 하고 있지는 않을 듯하다. 조금 건강한 방법으로 우울을 달려주려고 애쓸 테니깐. 그나저나 매번 우울이 올 때마다 선인장을 그리면 선인장 그림이 아주 많이 쌓일 텐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우울, 선인장>이라는 주제로 그림 전시회를 열거나 그림책을 만들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우울이 가끔 찾아와도 괜찮을 듯하다. 내게는 우울을 달래줄 그림과 글이 있으니깐. 이제 그림 그린 것을 정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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