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짜릿한 몰입감은 정말 오랜만이다. 30초라는 시간은 물리적으론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몰입을 하게 된다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오늘 링 위에서 30초 동안 완벽에 가까운 몰입을경험했다. 이 몰입의 시작은 아이컨택이다.
미트 연습을 위해 글러브를 끼고 링 위로 올라갔다. 1세트에서 웬일로 몸이 평소보다 더 풀려 있었다. 어깨와 주먹에 힘이 빠지니 펀치가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발은 어색했다. 바로 눈치챈 관장님. 매의 눈을 가진 관장님은 피할 수가 없다. 바로 피드백을 받고 발 위치가 제대로 될 때까지 연습을 계속했다. 신기하다. 발 위치 하나 바꿨을 뿐인데 자세도 안정적이고 펀치에도 힘이 들어갔다. 역시 어떤 일이든 위치를 제대로 잡으면 좋아지게 된다. 하지만 나 혼자 잡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전까진 꼭 피드백이 필요한 것이다.
피드백 때문일까. 2세트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웠다. 이번엔 방어 기술이다. '어퍼-훅-투-오른팔 방어-왼팔방어-원-투-오른쪽으로 피하고-투' 어마무시한 연속 동작이다. 펀치는 따라가기 바쁘고, 발 스텝은 갈길을 찾지 못한다. 이대로 어리숙하게 끝낼 수는 없다. 3세트. 다시 정신 차리고 몇 번 천천히 연습한 뒤에 제대로 다시 시작한다. 바로 이때부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관장님과 아이컨택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눈은 고정. 글러브는 하얀 미트로 직행. 발은 가볍게. 숨은 거칠게. 세상에 뭐야... 뭐지? 이 짜릿한 몰입감. 장난 아니다. 온 세상이 다 내 눈앞으로 모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 몸의 모든 감각이 내 글러브에 있는 듯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일까?
물론 아쉽게도 짜릿함은 아주 짧았다. 나의 체력은 이 짜릿한 집중력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아, 이 슬픈 저질 체력. 저질 체력으로 몰입의 순간은 짧았지만 그 짜릿한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관장님과 링 위에서 한 아이컨택. 글러브를 낀 주먹이 미트에 팍팍 꽂히는 그 순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러다 깨달았다. 이렇게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내 눈앞에 있는 관장님의 눈만 보았기 때문이다. 나의 집중력이 많이 흐트러졌다면. 다른 필요 없는 물건은 다 치우고 내가 봐야 하는 그것만 딱 봐야 한다. 쉬워 보이지만 어렵다. 특히 요즘은 더더욱.
앞으로 짜릿한 몰입감을 느끼고 싶거나. 꼭 몰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오늘의 경험이 바로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것과 아이컨택부터 하겠지. 그래,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기억하자. 제발. 몰입을 원한다면 아이 컨택부터. 오늘의 복싱 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