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영문 캘리그래피ㅣ캘리일상기록
영문 고딕체 [b]는
자신 있어서 '촉'대로
거침없이 들어가고,
영문 고딕체 [c]는
딱 봐도 자신 없어서 '촉'대로
과감하게 빠져나왔다.
영문 고딕체 [a]를 쓰고 하루를 통으로 쉬었다. 손가락 통증이 있을 때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근육통 연고와 냉찜질을 하면서 손가락이 좋아지길 하루 동안 기다렸다. 물론 금단현상으로 ‘0’ 시가 넘은 새벽에 잠깐 연습이나 해볼까? 싶었지만 그 마음을 냉큼 접었다. 연습이 연습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촉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촉 덕분에 다음날 저녁쯤 되니 손가락이 한결 좋아졌다.
손가락 통증이 좋아지니 꾸물꾸물 연습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다음에 연습할 글자는 알파벳 [b]이다. 영문캘리선생님이 써주신 [b]를 보았다. 왠지 집중해서 연습을 하면 잠자기 전까지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b]를 쓰는 거지만 좋은 느낌이 왔다. 기본 선연습과 1 닙만 잘 찾으면 1시간.. 아니 어쩌면 30분 안에 과제용지에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바로 페렐렐펜 뚜껑을 열고 종이에 손 풀기 기본 선연습을 시작했다. 다행히 손가락 통증도 괜찮았다. 기본선도 잘 나왔다. 느낌이 좋을 땐 뒤도 돌아보지 말고 본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때를 놓치면 이상하게 글씨가 제멋대로 못생기게 된다. 호흡을 천천히 내뱉으면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손목의 움직임은 최소로 하고 어깨를 사용해 [b]를 써보았다.
어라, 30도 직선이 부드럽게 써지지 않는다. 45도 선도 못생겼다. 역시나 [b] 모양을 만드는 두 개의 선이 만나지 않았다. 느낌 좋았던 거 맞나? 다시 써보았다. 흠. 연속으로 7번을 써내려 갔는데 [b]라는 알파벳 글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페렐렐펜을 내려놓고 손가락 스트레칭을 해보았다. 역시 조금 뻣뻣했다. 가볍게 손가락 스트레칭을 해주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운동선수들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 듯이 나 역시 영문캘리그래피를 쓰다 잘 되지 않으면 손가락 스트레칭을 한다. 그러면 확실히 마음이 차분해진다. 뭐 덤으로 손가락도 유연해지니 나쁠 것은 없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처음보다 안정적이다. 3줄 정도 계속해서 [b]를 쓰다 보니 다시 자신감이 생겼다. 과제 종이에 써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실패하면 다시 [a]부터 써야 하지만, 뭐, [a]만 다시 쓰면 되니깐. 에잇. 모르겠다. 하고 질러버렸다.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나름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도전한 것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날카로운 감각을 손끝으로 보냈다. 흔들리면 안 된다. 1 닙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확한 길이가 나와야 한다. 직선은 반듯하게 연결 부분은 부드럽게. 호흡에 맞춰 천천히 써야 한다. 캬-. 이거다. 이게 바로 영문 고딕체 [b]이다. 휴, 살았다. 무사통과를 위해 주문을 걸긴 했지만 진짜로 [a]를 다시 쓸까 봐 진땀이 났다. 심지어 [a]는 글자가 두 개다.
됐다. 이제 더는 욕심을 내면 안 된다. 딱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촉이 왔다. 이미 새벽 1시가 되었다. 룰루랄라 기분이 좋을 때 딱 멈춰야 한다. 그리고 고딕체 [c]를 봤는데. 1시간 안에 해결될 글자가 아니다. [c]는 기본 선은 어렵지 않지만 복병이 하나 있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연습을 해야 완성할 수 있는 글씨이다. 뭐든 치고 빠지는 것을 잘해야 한다. [b]에 빠져들어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딱! 하고 자신감이 자석처럼 붙을 때가 있다. 강력한 자신감을 느껴 할 수 있겠다는 촉이 오면 거침없이 실전으로 들어가야 한다. 머뭇거리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일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타이밍이 맞아 하나가 잘 마무리되었다면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 더 깊게 들어가면 안 될 듯싶으면 바로 빠져나와야 한다. 자신감에 취해 날카로운 촉을 놓아버리면 앞에 쌓아 놓았던 것이 우르르르 다 무너질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b]까지만 하고 [c]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 것이다. 하하하. 치고 빠지기 기술을 잘 펼쳐야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빠져나왔으니깐 중드 몇 편만 보다가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