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카네이션 화분, 선인장과 미니 올리브나무 등에 물을 주면서… 커피를 마시는 나를 꿈꿔 본다.
나는 베란다를 원한다.
베란다가 있다면 크고 작은 화분들을 놓고 싶다. 화분과 창문 사이에 작고 동그란 티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놓을 것이다. 의자 하나는 나만 앉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누구나 앉을 수 있다. 식물과 나를 위해 맨 발로 다닐 수 있는 그러니깐 발가락이 시리지 않는 바닥을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 한 겨울에도 티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창문 너머의 거리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그런 따뜻한 베란다를 원한다. 이것이 나의 ‘베란다, 몽상’이다.
조금 욕심을 내자면 영문캘리그래피와 오일파스텔 작업을 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차를 마시는 공간과 소소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베란다를 꿈꾼다. 아무래도 일상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가 보다. 만약 내가 꿈꾸는 베란다가 아닌 창고용 베란다가 생긴다면 거실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을 베란다에 넣을 수 있다. 그러면 정신없는 거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가족 모두 정돈된 거실에서 편하게 지낸 수 있을 덴데. 하지만 결국 나는 베란다를 창고보다는 나를 위로해 주고 마음을 챙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창고역할을 해줄 베란다가 제일 필요하다는 것을. 세탁기와 건조기가 지금보다 넓은 공간으로 이사를 갔으면 좋겠고. 김치냉장고는 주방 근처에 있지만 주방에는 없었으면 한다. 아무래도 주방옆에 베란다가 하나 더 있어야겠다. 선풍기와 청소기도 거실이나 방에서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들은 아무리 무시를 하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크기다. 아무래도 지금 필요한 건 화분을 놓고, 티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베란다는 아닌가 보다. 창고형 베란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현실은 ‘베란다, 몽상‘을 원하기 힘들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는 짐꾼 베란다가 있어야 한다. 이건 불변의 법칙이다. 거부할 수 없다. 베란다의 운명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집 상태를 보았을 때는 말이다. 하지만 그 차가운 현실을, 운명을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여전히 베란다에 대한 나만의 몽상을 원한다. 현실과 몽상. 베란다와 몽상. 크고 작은 화분, 티테이블, 의자 2개, 책상. 따뜻한 베란다 바닥. 아직도 현실보다는 몽상을 갖고 싶다. 몽상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나는 '베란다, 몽상'을 원한다. 아무래도 거실을 정신없게 만드는 물건들을 버려야 가능할 것 같다. 마음만 먹고 매번 실패하던 비움을 할 때가 온 것이다. 미련을 두지 말고 잘 가라고 인사를 하면 못 비울 것도 없을 것이다. 비워버린 그 공간에 딸아이가 준 카네이션 화분과 선인장, 미니 올리브나무 등을 놓으면 좋겠다. 베란다는 없지만 거실 창가 앞을 ‘작은 베란다, 몽상’의 공간으로 꾸밀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고 잠깐 쉴 수 있을 테지.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아주 잠깐이라도.
몽상은 몽상이라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몽상을 마음에 품고 조금씩 변화를 주면 언젠가 몽상이 현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몽상’을 꾸고, 원하는 거다. 현실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몽상을 지나가는 보통의 꿈으로 나두지 않는다. 벌써 바람이 차다. 봄에 꾸웠던 나의 몽상들이 있다. 그 몽상들은 현실이 된 것도 있고, 아직 몽상인 것도 있다. 베란다가 아직 몽상인 게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아직 ‘베란다, 몽상’을 원하고 있으니깐. 곧 작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음...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