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디스크의 힘
화장실로 가는
퇴행성 디스크의
길고도
짧은
여정
퇴행성 디스크는 허리를 통나무로 만든다. 근육이 딴딴해 앉았다 일어날 때 부드러움은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화장실을 가고 싶은가. 인생 최대의 고비가 다가온 거다. 밥 반 그릇만 먹을 걸. 물도 반 컵만 마실 걸. 소화력도 떨어졌구먼. 아휴. 누워있는 몸을 일으켜 필라테스에서 하는 네 발 기기자세를 해본다. 진심 여기가 이불 위가 아니라 센터였으면 좋겠다. 몸이 조금 좋아지면 내 다시 가리라. 3년 된 운동복은 버리고 가리라. 그래, 욕망이 생겨야 의지가 타오르겠지.
다시 집중. 마음을 다져야 한다. 자, 일단 호흡을 하며 복부에 힘. 힘 준거 맞나. 불량코어를 갖고 있는 복부가 불쌍하다. 지방에 쌓여 빛을 보지 못해 반항하는 걸지도. 일단 복부코어를 달래며 의자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본다. 의자까진 짧은 거리다. 맞다, 거리상 짧은 거리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절대 짧은 거리가 아니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 페르마타(Fermata. 늘임표.)가 필요하다. 피아노의 음을 2~3배 정도 늘여서 연주하게 만드는 악상기호. 늘임표가 주는 안정감이 네 발까지 전이된다. 그래. 까짓것. 두 발도 아니고 네 발이잖아. 요추전만과 지방 속에 숨어있는 코어에 힘도 주고 있잖아. 움직이자. 천천히, 느리게, 안전하게 기어간다. 페르마타, 페르마타.
허리가 뻐근해져 온다. 통나무 허리근육은 힘주는 것도 어렵다. 바닥에서 의자로 손을 옮긴다. 의자가 두 개라 양손에 힘을 줄 수 있어 다행이다. 엉덩이를 뒤로 쭉 뺀다. 한쪽 다리를 움직여 발바닥이 바닥을 지지하게 만든다. 손과 어깨에 악센트(accent. 다른 음에 비해 특히 세게 힘을 주어 연주하는 악상 기호)를 주어 일어나 본다. 절대 다른 곳에 힘을 주면 안 된다. 악센트가 필요한 곳은 딱 세 곳이다. 두 팔과 한쪽 발바닥. 무릎이나 허리에 악센트가 들어가면 끝이다. 순간의 힘으로 쫘악. 하지만 부드럽게 일어나야 한다. 화장실 한 번 가기가 이리도 힘든 일이라니. 더욱 미워지는 퇴행성 디스크다.
인간은 두 발로 설 수 있다. 너도 두 발로 설 수 있다. 우뚝. 엉덩이의 무게는 생각하지 말고 두 다리에 집중하는 거다. 발바닥에 힘을 끝까지 줘야 한다. 엉거주춤한 자세지만 그래도 살살 일어나 본다. 잠깐, 숨을 고르며 자세를 잡는다. 두 손을 허벅지에 올려놓는다. 허리를 둥글게 만들면 안 된다. 언제 어디서나 요추전만을 유지해야 한다. 풀린 코어도 다시 잡는다. 잘하고 있어. 호흡도 끝기지 않게 신경 쓴다. 스타카토의 리듬감으로 오른손과 왼손을 차례대로 움직여 본다. 딴, 딴, 딴, 딴. 음을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스타카토. 피아노 건반 위가 아니라 허벅지 위에서 연주하는 스타카토. 리듬감을 잘 살리는 양손이 고맙네 고마워. 드디어 허벅지 위에서 허리로 올라온 손. 휴우, 이거 완전 할머니 자세다.
아니지, 할머니 자세면 어때. 화장실만 갈 수 있다면 어떤 자세든지 꾸벅 인사해야지. 이제 화장실 문 앞까지 정박으로 걸어가는 거다. 쉽네 쉬워. 쿵따닥. 쿵따닥. 쿵따닥. 쿵따닥. 휴우. 걷는 건 조금 괜찮아졌다. 쉼표 없이 다 왔다. 화장실 문 앞이다.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화장실 문 안의 일은 비밀이다. 내일은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마셔 볼까. 화장실 가기 정말 싫다.
P.S. 아쉬울까 봐. 남겨요.
숨겨져 있는
폭탄이 있어요.
그건,
바로.....
화장실 문 앞에서 이부자리까지
도돌이표 시작.
흑흑.
여러분의 몸 컨디션은 어떤가요?
어떤 악상기호로 표현할 수 있나요?
사진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