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볼, 퇴행성디스크를 이길 무기

불편한 디스크의 힘

by 흔적작가


땅콩볼야,
통증 한 번 잡아볼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


남편. 마사지해 줘서 고마워. 이제 그만해도 돼. 헉, 눈치 빠른데. 맞아, 미안하지만 시원함이 2% 부족해. 풀려야 하는 근육이 있는데. 살짝씩 벗어나서 그런지 조금 덜 시원하네. 하하하. 걱정하지 마. 대신 나에겐 당신이 사준 연두색 땅콩볼이 있잖아. 신의 한 수란 이 땅콩볼을 두고 하는 말인가 봐. 퇴행성 디스크로 생긴 허리통증엔 땅콩볼 만한 건 없는 듯싶어.




안방에 이부자리를 피고 말랑한 폼롤러를 베개 삼아 엎어져 있는 나. 허리통증이 온다. 연두색 무기가 필요해. 손을 뻗어 주변을 탐색해 보지만 없다. 눈을 돌려가며 2차 탐색을 했으나 정말로 없다. 순간 일어날까 고민을 했지만 귀찮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허리 통증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오래 걸려서 그런 것이다. 레드 션. 딱. 내 말이 곧 정답이다. 레드 션. 딱딱. 고개를 돌려본다. 닫힌 안방문이 뚫리도록 불러본다. 서연아~~~. 남편~~~. 대답 없는 그대들. 그래, 다시 한번 더. 적당한 복압을 유지하고, 목청껏 불러 본다. 소리 파동은 안방문을 뚫고 주방과 거실까지 가야 한다. 기체와 고체의 허들을 넘어야 한다. 소리 파동이 끝까지 견딜 수 있을까. 마지막 파동이 주방과 거실 구석구석에 배치된 가구 지뢰밭에 묻히지 말아야 할 텐데. 부디 그대들의 이름을 실어 나르는 소리의 잔향시간이 길어 내 목소리가 전달되기를 빌어본다. 정말로 일어나기 귀찮다.


내 목소리 들리지~?


허리통증이 좋아지고는 있지만. 절. 대. 무. 리. 금. 지. 이 행동지침을 실천하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지금도. 목 찢어지게 부르고 있다. 대답 좀 해주라. 내 목소리가 작은 편은 아닌데. 복식호흡을 하는 목소리라고. 머리로 울리는 목소리라고. 들릴 텐데. 왜 이리 반응이 없는 걸까. 벌-컥. 끼-익. 오, 드디어 문이 열린다. 누굴까. 남편일까. 딸일까.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려와 누구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딸이다. 정답. 역시 경쾌한 발소리의 주인은 남편이 아니었다. 이게 뭐라고. 맞추는 재미가 있다. 그래. 아파 누워있는 사람에게 이런 소소한 맞춤의 즐거움이 있어야. 그나마 웃고 살지. 입꼬리가 축 쳐져서 화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정말 못생겨서 죽을 맞이다. 급하게 입꼬리를 올려보지만 경련이 일어나는 볼살들로 금세 웃는 얼굴은 풀어져 버린다. 김치와 치즈를 찾아보지만. 영 이상하다. 웃는 얼굴을 잊어버리기 전에 웃을 만한 일들을 찾아봐야겠다. 허리 통증이 줄어드는 만큼 웃을 일이 늘어나길 바라본다.



엄마, 왜 불렀어. 뭐 필요해. 웃는 얼굴로 물어오는 아이. 웃는 거 맞지. 왠지 어깨가 처진 듯한데. 본능적으로 아이에게 입꼬리를 올려 눈웃음을 보내 본다. 웃는 눈만큼 내 입에서 아이가 반가워할 말이 나가면 좋을 텐데. 안타깝다. 온통 이것 좀 갖다 줘. 저것도 갖다 줘. 그것도 부탁해.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음, 너무 자주 부르면 힘들까 봐. 나름 고민한 방법이다. 부탁은 한 번에 몰아서 하기. 양심을 좀 챙겼다. 챙긴 거 맞겠지. 고맙다는 말과 뽀뽀도 잊지 않고 아이에게 한다. 주문한 물건들을 건네주고 빠른 걸음으로 거실로 나가는 아이. 안방문이 닫히기 전에 아이의 뒤통수에다 대고 외쳐본다. 고마워, 딸~. 고맙다는 말은 소리의 잔향이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분명 저 방문을 뚫고 거실로 걸어가는 아이의 귀에 전달되었겠지.




드디어 퇴행성 디스크를 이길 무기를 얻었다. 땅콩볼 마사지. 척추를 중심으로 양쪽에 자리 잡은 불편한 근육을 자근자근 눌러 풀어보리라. 목, 승모근, 날개뼈 사이, 등, 허리, 엉덩이까지. 거미줄처럼 엉켜 떡져있는 근막에 땅콩볼의 시원한 맛을 선물해야겠다. 경추부터 해볼까. 시~원~해~라. 이젠 승모근이다. 살살 몸을 흔들어 본다. 그래, 머리가 맑아지고, 눈이 초롱초롱 해지는 기분이다. 좋아. 연두색 땅콩볼을 살살 굴려 승모근을 지나 날개뼈 사이의 근육이 있는 곳으로 내려보낸다. 역시, 시원~ 윽, 아니다. 맵. 다. 목청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물결을 치며 날카롭게 퍼져나간다.


아프다. 근데 시원해. 그래서 짜증나.


후, 후, 후. 짧은 호흡이 소리의 잔향을 싹둑 잘라버린다. 너무 아프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멈춰, 말어. 시작된 고민에 마음이 어지럽다. 어지러운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어라, 매운맛이 줄어들었다. 매운맛 뒤에 오는 시원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그래, 이 맛에 마사지를 하는 거지. 무엇이든 처음이 힘든 거다. 잠깐의 고비를 넘기면 할 만하다. 큰일이다. 등이 펴지고 근막이 펴지고 있다. 처음 맛본 이 맛을 잊기란 어려울 듯하다. 위험해, 위험해. 이제는 문제의 등과 허리를 공략할 차례다. 아파봤자지. 이미 매운맛을 한 번 봤다고. 네가 매워봤자지. 딱, 기다려. 무슨 맛이 기다리고 있던지 내가 즐겨줄 테니깐. 짧은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땅콩볼을 내려보낸다. 불편한 디스크를 이길 무기. 땅콩볼 마사지. 엉덩이까지 부탁해.



땅콩볼,

다리와 발바닥도
자근자근
눌러볼까?





우리집 매트 위 영롱한 연두색 땅콩볼 마사지. 널 사랑해.




사진출처; 픽사베이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