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가 오면 열리는 일기
[퇴행성 디스크와 함께하는 일상에 대한 짧은 생각과 느낌을 일기로 씁니다.^^]
- 디스크와 밥 먹기 스킬
디스크 통증은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한다. 어쩜 이리도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지. 정말 민망하다. 5개월 동안 의자와 친해지기 위해 나름 노력을 했다. 허리 받침 의자를 사용해 올바른 자세로 앉아 보았다. 코어에 힘을 주고 흉식호흡을 하며 앉아도 보았다. 앉아 있다가 허리에 무리가 조금이라도 생긴다 싶으면 바로 일어났다. 힘들게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했나 보다. 5분, 10분, 15분.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밥을 먹을 때 5분, 10분, 15분마다 일어나야 한다. 식탁에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입안에 음식을 넣고 맛있게 씹고 있어도. 통증이 일어나라고 명령을 하면 거부할 수가 없다. 당장 일어나야 한다. 통증의 노예가 되는 시간이다. 기분이 상해서 맛의 기쁨을 느낄 수가 없다. 분위기가 자꾸 깨진다. 역시 디스크 통증은 참 별로다. 내 소중한 입맛을 빼앗다니. 복수를 하고 싶다. 쓰으싹 쓰윽싹.
심지어 디스크 통증은 코 박고 밥 먹기 스킬도 빼앗아 갔다. 눈이 번쩍일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코 박고 밥을 먹어야 한다. 고개를 들고 먹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최대한 음식과 입이 가까워야 감동이 끊기지 않는다. 배가 심하게 고플 때도 고개를 숙여 음식만 보면서 먹어야 한다. 배가 고픈데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는 것은 음식에 대한 배신이다. 고개는 밥그릇을 싹 비우고 드는 것이다. 가장 본능적인 행동이 바로 코 박고 밥 먹기이다. 이렇게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스킬을 디스크 통증이 빼앗아 간 거다. 더 이상 코 박고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나름 복스럽게 먹는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는데. 이젠 틀렸다. 코 박고 밥 먹기 스킬을 뺏겼으니 밥 먹는 다른 스킬을 만들어야 하나 보다.
아쉽다. 코 박고 정수리만 보여주면서 먹고 있으면 듣던 말이 생각난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렇게 먹어, 여기 더 있으니깐 더 먹어. 아니, 얼마나 맛이 있길래 저렇게 먹는 거야. 나도 한 입만 줘봐. 먹방을 제대로 보여주었던 그때로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툭하면 먹다가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면서 일어나는데 먹방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당연히 없다. 디스크가 먹방 스킬도 뺏은 거다. 남편도 잘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었는데. 이젠 흐뭇해하는 얼굴보다 걱정하는 얼굴을 한다. 밥 먹는 시간이 즐거움이 아니라 불편함이 되었다. 더 이상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배고픈 이에게 먹고 싶은 충동을. 함께 먹는 이에게 기쁨을 줄 수가 없다. 먹방이 쳐다볼 수 없는 금단의 사과가 되었다. 역시 복수가 답이다.
복수를 위해 밥 먹기 기술을 연습하고 있다. 허리 받침 의자, 코어에 힘주기, 흉식호흡하기는 기술을 위한 기초단계다. 기초과정을 마쳐야 기술 습득이 조금 더 쉽다. 첫 번째 기술은 정수리를 천장으로 곧게 올려 보내는 느낌으로 앉기이다. 보통 요가에서 하는 자세다. 정수리가 자라나는 듯한 느낌을 주어야 척추가 길어져 아픈 허리에 압력을 적게 받는다. 두 번째 기술은 밥그릇 들고 먹기이다. 코 박고 먹기는 허리를 숙여야 해서 통증에 약하다. 한 손에 밥그릇을 들고 허리를 펴서 먹으면 숙여서 생기는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밥 먹는 예절보다 허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누워서 먹는 것보다 밥그릇 들고 먹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세 번째는 서서 먹거나 걸으면서 먹기이다. 앉기가 힘들 땐 서서 먹어야 한다. 만약 서서 먹다가 힘들면 밥 한 숟가락을 입안에 넣고 천천히 거실을 걸으면서 먹으면 된다. 처음에는 같이 먹는 사람들이 불편해할 것이다. 그래도 흔들리면 안 된다. 통증을 이겨낼 그 순간을 상상하며 밥 먹기 스킬을 갈고닦아야 한다. 스킬이 쌓이면 밥 맛이 돌아오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Q. 오늘은 괜찮나요?
A. 밥그릇 들고 먹기가 생각보다 편하고 좋아요. 근데 밥그릇 들고 먹다 보니 숟가락 사용이 많이 줄었어요. 신기하지요?
사진출처: 내 폰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