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하고 말 똑바로 해요. 저쪽 팀은 여PD님이 제일 만만하니까 여PD님한테 먼저 말하는 거라고요.
서책임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다른 부서에서는 업무지원 요청에 관해 나에게 종종 문의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먼저 “책임님과 상의하고 알려드리겠다.”라고 말은 했지만 그전에 내가 뭣도 모르고 업무를 받아줬던 기억 때문에 나를 계속 먼저 찾았다.
“거기서 아무리 뭐라 해도 우리는 우리 업무가 가장 우선순위예요. 우리는 저기 하부 부서가 아니라고요!”
서책임의 이 말 때문에 계속 다른 부서 업무와 미팅을 할 땐 업무적인 부분보다 미팅에 있어 우위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계속 쓰였다. 간단히 되는 업무도 며칠이 걸리는 듯한 뉘앙스로 대답해야 했고 결과물을 만들어 냈을 때 바로 다른 부서에게 검토를 요구하지 않았다. 결과물을 제출하기로 한 기한까지 일부러 기다렸다. 일부러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찝찝했지만 최소한의 자기 방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업무 외에도 각 부서의 권력싸움에 신경 쓰는 나머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또한 어느새 그쪽 부서의 마음에 들게끔 작업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많이 지쳐갔다. 그때 확실히 알았다.
“이 곳에선 내 커리어를 높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본업보다 정치싸움에 더 얽매여서 더 이상 나를 갉아먹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