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도 글쟁이가 아닌가
열흘 전, 보배단지가 비로 연기되었던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이른 아침부터 장대비가 내려 또 취소되겠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비가 그치면서 예정대로 출발했다. 산림공원으로 소풍을 갔는데, 며칠 동안 이어진 비와 갑작스러운 기온 하강이 걱정되었지만 오랫동안 기다려온 날이니 그저 무사히 다녀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다음 날, 주말부터 갑자기 춥다고 하더니 저녁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8도 전후로 오르내리더니 새벽이 되자 40도를 넘나들었다.
해열제도 소용이 없었다.
이른 아침, 응급실로 데려가 검사를 받았다. 오후에 나온 결과는 충격이었다.
조류독감. 전염성이 강하니 격리하고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데 보배단지는 “아빠랑 있을래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마눌은 아직 수술 부위가 아물지 않아 퇴원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나는 전염될 걸 알면서도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마눌은 그러지 말고 입원시키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내가 돌볼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어쩌겠는가, 아이는 아프고 나는 아빠이지 않은가.
의사의 진단대로 약을 먹이고, 수분을 챙기며 하루 종일 곁을 지켰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열이 내리고 몸살 기운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간혹 기침만 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이번에는 내가 전염된 것이다. 가까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결과는 ‘양성’.
처음엔 머리가 약간 어지럽더니 고열과 기침이 이어지고 온몸이 욱신거리기 시작하였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를 재운 후, 서재에 앉으면 머릿속이 끓는 듯했고, 잠을 자려 누우면 이불속에서 뼈마디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결국 온전치 않은 몸으로 오직 보배단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래도 평소에 운동을 했던 탓에 마땅히 할 일을 감당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지만 일주일은 너무 길었다.
몸은 점점 엉망이 되어갔고, 학교에서도 완전한 음성 판정을 받을 때까지 보배단지는 등교할 수 없단다.
결국 아이를 돌보며 동시에 자신도 돌봐야 하는 시간.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버텼다.
어쩌겠나. 나는 아빠인데.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다행히 보배단지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이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정상 수업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집 안에서 마스크를 쓴 채 근육통과 기침을 참아가며 집안일을 하고, 틈틈이 글을 쓴다. 이전처럼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댓글을 달지는 못하지만 틈틈이 누워서 읽고, 그리고 내가 쓰고자 했던 글을 쓰고 또 올리고 있다.
“어쩌겠나. 나는 아빠이면서, 작가잖아.”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나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