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별이 고개를 들던 날

청춘의 눈물 속에서 피어난 의리 한 송이

by Itz토퍼

대학에 입학한 후, 제 일상은 학업과 시위, 그리고 알바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군생활을 마치고 복학을 앞두었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는 아버지에게 완전히 독립된 상태였습니다. 당장의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알바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첫 일은 을지로 출판사의 외판원이었지만,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했습니다.

낮에는 출판사 일을, 밤에는 남산 근처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 알바를 했죠.

그래도 생활비가 모자랄까 봐 주말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 화양리(지금의 화양동)에 있는 음악다방에서 잡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꽤 유명한 가수로 활동하던 선배가 운영하던 음악다방이었습니다.

주변에는 세종대와 건국대가 가까이 있었고, 손님들 대부분은 대학생들이었죠.


IMG_0617-00.JPG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저를 불렀습니다.

“너 음악 좀 안다며? 주말 오후에만 DJ 좀 봐줄래? 손님들이 신청곡 쪽지를 내면 음반만 찾아서 틀어주면 돼. 어렵지 않아. 알바비는 넉넉히 줄게. 그리고 혹시 돈 필요하면 언제든 형한테 말해. 힘닿는 대로 도와줄게.”

그 선배는 지금도 이름만 말하면 대부분이 아실 만큼 유명한 분입니다.

그렇게 저는 난생처음 DJ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참고로 당시엔 오늘날의 카페에 해당하는 분위기에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곳은 음악다방이 최고였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단골 아지트가 되기도 했고, 미팅 장소로는 최적이었죠.


저는 매번 DJ 부스에 앉으면 늘 같은 곡으로 시작했습니다.

그해 유행하던 곡으로 'RockWell - Knife'였는데, 지금도 제 인생의 오프닝 음악처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음악만 틀었지만, 아주 가끔 멘트를 하다 보니 제 부산 사투리가 오히려 매력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조금 굵직한 제 목소리와 사투리가 어우러지니, 특히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생기기 시작했죠.

예상치 못했던 DJ 알바는 제게 의외의 성취감을 주며, 점점 잘 풀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여종업원 한 명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미성년자처럼 보였죠.

“니, 미성년자제?”

“아뇨, 저 이제 막 스무 살이에요. 어려 보여서 그래요.”

그렇게 말했지만, 전 도무지 믿기지 않았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걸렸습니다.


주말 오후, 손님도 별로 없고, 제가 좋아하는 오프닝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주방 앞에서 그 아이가 움츠린 채 앉아 있었죠. 멍하니 앉았다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곧 머리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확신했습니다.

“절마, 미성년자 맞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출근할 때 김밥 두 줄을 사서 한 줄은 꼭 그 아이에게 건넸습니다.

“이거 묵고 힘내라.”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죠. 누이 같은 나이에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늦은 밤, 그 아이가 제 하숙집 앞으로 찾아온 겁니다.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웠죠.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Itz토퍼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입니다. 오늘도 작은 위로와 사유의 빛을 담아, 나만의 이야기를 조용히 써 내려갑니다.

27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6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43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5화시간을 멈추고 싶은 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