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눈물 속에서 피어난 의리 한 송이
대학에 입학한 후, 제 일상은 학업과 시위, 그리고 알바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군생활을 마치고 복학을 앞두었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는 아버지에게 완전히 독립된 상태였습니다. 당장의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알바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첫 일은 을지로 출판사의 외판원이었지만,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했습니다.
낮에는 출판사 일을, 밤에는 남산 근처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 알바를 했죠.
그래도 생활비가 모자랄까 봐 주말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 화양리(지금의 화양동)에 있는 음악다방에서 잡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꽤 유명한 가수로 활동하던 선배가 운영하던 음악다방이었습니다.
주변에는 세종대와 건국대가 가까이 있었고, 손님들 대부분은 대학생들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저를 불렀습니다.
“너 음악 좀 안다며? 주말 오후에만 DJ 좀 봐줄래? 손님들이 신청곡 쪽지를 내면 음반만 찾아서 틀어주면 돼. 어렵지 않아. 알바비는 넉넉히 줄게. 그리고 혹시 돈 필요하면 언제든 형한테 말해. 힘닿는 대로 도와줄게.”
그 선배는 지금도 이름만 말하면 대부분이 아실 만큼 유명한 분입니다.
그렇게 저는 난생처음 DJ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참고로 당시엔 오늘날의 카페에 해당하는 분위기에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곳은 음악다방이 최고였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단골 아지트가 되기도 했고, 미팅 장소로는 최적이었죠.
저는 매번 DJ 부스에 앉으면 늘 같은 곡으로 시작했습니다.
그해 유행하던 곡으로 'RockWell - Knife'였는데, 지금도 제 인생의 오프닝 음악처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음악만 틀었지만, 아주 가끔 멘트를 하다 보니 제 부산 사투리가 오히려 매력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조금 굵직한 제 목소리와 사투리가 어우러지니, 특히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생기기 시작했죠.
예상치 못했던 DJ 알바는 제게 의외의 성취감을 주며, 점점 잘 풀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여종업원 한 명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미성년자처럼 보였죠.
“니, 미성년자제?”
“아뇨, 저 이제 막 스무 살이에요. 어려 보여서 그래요.”
그렇게 말했지만, 전 도무지 믿기지 않았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걸렸습니다.
주말 오후, 손님도 별로 없고, 제가 좋아하는 오프닝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주방 앞에서 그 아이가 움츠린 채 앉아 있었죠. 멍하니 앉았다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곧 머리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확신했습니다.
“절마, 미성년자 맞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출근할 때 김밥 두 줄을 사서 한 줄은 꼭 그 아이에게 건넸습니다.
“이거 묵고 힘내라.”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죠. 누이 같은 나이에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늦은 밤, 그 아이가 제 하숙집 앞으로 찾아온 겁니다.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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