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고 싶다는 충동, 그건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
글을 쓴다는 것, 자신의 삶 속의 흔적과 지식 그리고 성찰을 기록하여 공감하는 이들과 나누고 또 그들과의 교제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작업과도 같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논리로 설득되고, 감정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죠.
왜 그럴까요?
글쓰기는 결국 ‘전달’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 전달은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공유’라는 이름으로 진화했습니다.
우리가 손 안의 작은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는 홍수처럼 밀려오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이 수문을 넘어 폭발적인 흐름을 만듭니다.
우리는 이 현상을 '바이럴'이라 부릅니다.
이 단어는 종종 유튜브 알고리즘이나 해시태그 전략 같은 첨단 기술의 영역으로 치부되곤 하지만, 정작 그 심장부에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감정과 욕망이 숨 쉬고 있습니다.
바이럴은 기술이 아닌 감정의 확산 현상입니다.
수많은 논리적 메시지와 객관적인 사실들 속에서, 유독 어떤 콘텐츠만이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고 손가락을 움직여 '공유'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것일까요?
이는 마케팅을 넘어 사회심리학, 진화심리학, 그리고 신경과학이 교차하는 지점, 즉 ‘사람이 왜 무언가를 퍼뜨리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공유의 첫 번째 본능은 소속감에 있습니다.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무리를 지어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왔습니다. 혼자 떨어진 존재는 곧 사냥감이 되었고, 함께 모여야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었죠.
그 생존 본능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인간은 ‘불안할 때 동굴로 도망가는’ 대신 인스타그램 피드를 열어 “나와 비슷한 부족들”을 찾습니다. ‘좋아요’ 버튼은 디지털 시대의 모닥불입니다.
불 앞에서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듯, 우리는 공감과 공유를 통해 ‘나도 이 부족의 일원이다’라고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브런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와 독자들이 피우는 모닥불이 한 부족을 형성하게 만들죠.
물론 이 마을이 제대로 된 ‘공유공동체’를 만들기엔 아직은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좋아요 따봉만 날리고 갈 뿐이지 공유는 잘 안되니까요. 앞으로 더 나은 부족촌이 만들어지리라 희망합니다.
내가 무엇을 공유하는가는 곧 나의 디지털 자화상입니다.
“나는 이런 유머에 웃고, 이런 이슈에 분노하며, 이런 가치관을 지닌 사람입니다.”
공유는 세상에 대한 선언문이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보내는 무언의 러브레터입니다.
또한 우리는 공유를 통해 작은 사회적 자본을 쌓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에 올라오는 글이나 영상을 분석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죠. 대부분은 비슷한 색상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재미있는 걸 퍼뜨리는 사람은 ‘센스 있는 친구’로, 꿀팁을 알려주는 사람은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기억되죠.
그래서 이 디지털 평판은 현실의 명함보다 오래갑니다.
공유는 외로움을 달래고, 존재감을 확인받고, 관계를 유지하는 21세기형 ‘손 편지’ 같은 행위인 셈입니다.
공유의 뿌리가 소속감이라면, 그 행동을 폭발시키는 엔진은 감정의 불꽃입니다.
감정은 바이러스보다 빠르고, 와이파이보다 강력합니다.
심리학자들은 ‘고조된 감정(High-Arousal Emotion)’이 확산력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감동, 경외감, 분노, 불안, 이 감정들은 일종의 심리적 에너지 드링크입니다. 평이한 정보는 그냥 ‘읽고 지나가지만’, 감정이 터지는 순간 우리는 이성을 살짝 내려놓고 “공유해야 해!”를 외칩니다.
압도적인 경외감을 주는 자연 다큐멘터리 클립, 혹은 부당함에 대한 짧고 날카로운 분노의 고발 영상처럼, 이 감정들은 그 에너지가 너무 커서 타인에게 전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전염 욕구’를 만듭니다.
뇌 과학적으로 보면 이건 일종의 감정 회로의 쇼트 현상입니다. 공유 후 ‘좋아요’가 달리면 도파민이 분비되고, 그 달콤한 쾌감이 우리를 다시 공유하게 만듭니다.
즉, 우리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도파민의 줄에 묶여 춤추는 존재인 셈이죠.
공유는 단순한 자랑이 아니라 도움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타인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했을 때 ‘내가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낫게 만들었다’는 자기 효능감을 느낍니다. 친구에게 유용한 앱을 추천하거나,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알리는 글을 올릴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걸 알게 한 건 나야. 나는 꽤 괜찮은 인간이야.”
그때 느껴지는 작지만 포만감 있는 감정이 바로 자존감의 포만효과입니다.
공유는 그 자체로 사회적 기여 행위이며, 타인에게 작게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작은 영웅주의’를 제공합니다.
결국 콘텐츠는 대화의 연료이자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공유는 단절을 두려워하고, 의미 있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갈망을 충족시켜 주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이를 이용해 수입도 창출하죠.
바이럴은 최신 기술의 옷을 입었지만, 그 속살은 인류가 수만 년 전부터 간직해 온 ‘함께 살아가려는 본능’의 실체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퍼뜨리는 이유는 정보가 유용해서가 아니라, 그 행위가 곧 “나는 여기 있다(I am here)”는 선언이기 때문이죠.
자신이 속한 부족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부족과의 공유를 통해 고립의 불안을 잠재우고, 세상의 수많은 무리 속에서 나의 자리를 확인합니다. 공유는 결국 정서적 악수(Social Handshake)입니다.
“나도 이 부족의 일원이다.”
그 신호 하나로, 우리는 타인 속의 나를 다시 발견합니다.
결국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에 얹힌 온기와 연결감, 그리고 생존의 기억입니다. 그래서 바이럴은 클릭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외로움을 달래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