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식을 재구성하는 단계

나이를 먹는다는 것, 쇠퇴가 아니라 완성으로 향하는 여정

by Itz토퍼

저는 앞서의 글에서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꼰대'라는 말을 독자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라이킷' 숫자를 보면 알 수 있죠. 그래서 더더욱 '꼰대'에 대한 뒤풀이를 안 할 수 없더군요. 이 꼰대라는 단어, 이름만 보면 거리가 조금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젊은 꼰대'와 '늙은 꼰대', 이 둘은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나 마찬가지입니다. 공통점은 단 하나, 바로 '나이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죠.


어린 나이지만, 나이를 먹은 사고를 가진 사람, 어차피 나이는 먹었지만 사고방식이 스스로를 변화시켜 늙은 티 많이 내는 사람.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나이를 먹는다’는 말을 ‘늙어간다’로 해석합니다. 마치 유통기한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처럼요. 그런데 저는 그 생각이 많이 억울하다고 느낍니다. 왜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굳이 ‘노쇠 패키지’에 넣어야 할까요?


봄이 가을을 비웃을 수 없고, 여름이 겨울을 가엾게 여길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나이도 그저 계절이 바뀌듯 흐르는 과정이니까요. 그래서 이 흐름을 억지로 거부하기보다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계절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그저 ‘낡아지는 존재’로 남아버릴 테니까요. 한숨 쉰다고 멈추는 것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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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일생에 단 한 번 있었던 우연한 일을 잊지 못하며 매일 거울을 대합니다. 어느 날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늘 눈인사만 주고받던 유치원생 꼬마 아가씨가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그 말이 왜 그렇게 충격이었을까요. 난생처음 듣는 호칭, 환갑을 지나고 이제 칠순을 향한 내리막의 초입에 들었으니, 그렇게 충격적일 필요는 없었는데. 흰머리를 염색하고, 아무리 삶을 캐주얼하게 살며 옷을 그렇게 입는다 해도 제 얼굴은 바뀌었나 봅니다. 인정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쿡하고 찔렸던 건, ‘나이가 드는 것’과 ‘호칭이 바뀌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처음으로 체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빠’가 어느 순간 ‘아저씨’로 바뀌는 순간, 같은 아저씨의 뜻을 가졌지만 ‘아재’는 완전히 느낌이 다르잖아요. 거기다 '할아버지'라니. '아가씨'가 '아줌마'가 되고, 다시 '할머니'가 되는 거잖아요.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순한 생물학적 변화가 아니라 나를 부르는 세상의 언어가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애써 이 시기를 ‘쇠퇴’가 아니라 ‘성장 중’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늙음’이란, 마치 낡아서 쓸모없이 변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아침 산책길에 늘 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할머니 한 분을 가끔 마주칩니다. 칠순을 넘긴 나이인데도 표정은 맑고, 말투는 소녀 같고, 마음은 더없이 밝아 보였습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지금은 서로에게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아침 인사를 나누게 되었죠. 대화를 하다 보면, 그분은 세월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세월을 자기 방식으로 빚어낸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 모습에서 저는 ‘곱게 늙는다는 것’의 실체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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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입니다. 오늘도 작은 위로와 사유의 빛을 담아, 나만의 이야기를 조용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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