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깊은 곳의 진실을 마주하게 만든 한 곡
본 스토리랩(Story Lab)은 음악이 영화의 감정적 연결고리를 완성했다면, 글이 그 여운을 성찰로 확장시키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의 창작적 실험입니다.
감정이란, 비록 우리가 주인인 듯 보이지만 때로는 자기 마음대로 다른 길을 택하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바쁜 일상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마친 저녁이면, 아무 일도 없던 하루였는데도 이유 모를 무거움이 마음 한쪽으로 서서히 기울어지는 듯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 순간, 문득 오래 묵은 감정들이 조용히 심장을 두드리죠.
누가 건드린 것도 아닌데,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눈앞이 흐릿해지는 그런 때가 있지 않나요? 그날의 저는 그랬습니다. 기분이 왜 이렇게 헝클어졌는지 따져볼 힘도 없어서, 그저 책상 앞에 앉아 무심코 음악을 하나 눌렀습니다.
그리고 그 곡이 천천히 제 안으로 흘러왔습니다.
맥스 리히터(Max Richter)의 《On the Nature of Daylight》.
첫 음이 공기 속에 가늘게 떨리며 방 안으로 번져 오는 순간, 꾹 참아두었던 감정이 아주 작은 틈을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나지막한 소리가 방 안을 스쳤습니다. 꼭 오랫동안 닫혔던 문이 조금씩 열릴 때 느껴지는 그 미묘한 긴장감처럼. 음악은 크게 움직이지 않는 듯한데, 마음은 그 한 걸음에 이미 뒤를 따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곡은 원래 특정한 영화의 주제곡으로 태어난 음악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곡을 여러 감독들이 ‘이야기의 심장’처럼 끌어다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음악이 가장 깊게 스며든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입니다.
《셔터 아일랜드》에서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이 음악이 등장합니다. 안개에 싸인 섬, 묵직한 파도, 그리고 연방보안관 테디 다니엘스(Teddy Daniels,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가 배의 갑판에 서 있는 장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관객은 이미 이 이야기 아래에 비극적인 진실이 깔려 있을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음악이 먼저 알고 있다는 듯이 끊임없이 속삭이기 때문이죠.
영화의 중심엔 연방보안관 테디 다니엘스가 있습니다. 그는 흉악범을 수용하는 정신병원 시설이 있는 외딴섬 셔터 아일랜드에 실종된 환자 레이첼 솔란도를 찾기 위해 도착합니다. 하지만 섬은 그를 환영해주지 않습니다. 수용자들은 이상한 말을 던지고, 병원 직원들은 중요한 사실을 감추며, 밤이 되면 설명할 수 없는 환영들, 플래시백이 그의 잠을 파고듭니다.
테디는 사건을 파헤칠수록 이 섬 전체가 거대한 음모에 휩싸여 있다는 편집증적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는 이 섬에서 환자를 상대로 잔인한 인체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고 믿고, 심지어 실종 환자 레이첼 솔란도가 섬 깊은 곳의 등대에 감금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조사를 강행합니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아내 '돌로레스 차날'의 환영과 고통스러운 기억에 시달립니다.
그는 아내를 앗아간 방화범 '앤드루 레이디스(Andrew Laeddis)'에게 복수하겠다는 사적인 목적이 이 섬에 온 주된 이유라고 스스로 믿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초점은 이 섬이 아니라, 그가 섬으로 가져온 자기 자신의 기억이었습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테디'라는 사람이 들고 있던 과거가 조각조각 다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밝혀지는 사실은 너무나 잔인한 진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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