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에서 《피아니스트》까지, 절망을 넘어선 선율의 이야기
본 스토리랩(Story Lab)은 음악이 영화의 감정적 연결고리를 완성했다면, 글이 그 여운을 성찰로 확장시키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의 창작적 실험입니다.
어느 날 보배단지가 한국어 그림 동화책을 들고 와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한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목이 ‘성냥팔이 소녀’였습니다. 순간 멈칫했지만, 이제는 충분히 받아들일 나이라고 생각해 읽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이는 슬픔에 북받쳐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기뻤습니다. 딸이 그만큼 컸다는 증거였으니까요. 보배단지를 안아주며, 아이에게 세 가지를 전했습니다.
“슬퍼도 괜찮아, 그건 네 마음이 따뜻하다는 뜻이란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서로를 돌봐야 한다는 걸 알려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이웃 사랑이라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무서운 게 아니란다. 성냥으로 몸을 녹이던 소녀가 사랑하는 할머니 품에서 드디어 따뜻해졌잖니. 세상엔 사랑만큼 따뜻한 게 없단다.”
그렇게 아이에게, 사랑이 어떻게 비극을 넘어서는 힘이 되는지를 조용히 가르쳐주었습니다. 슬픔을 따뜻함으로 바꾸는 창작물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성냥팔이 소녀’가 아닌 영화 한 편과 음악 한 곡으로, 그리고 보배단지가 아닌 독자 여러분께 그 이야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2002년 영화 《피아니스트(The Pianist)》는 제2차 세계대전, 특히 나치 점령 하의 바르샤바 게토에서 생존한 유대계 폴란드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극한의 환경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예술가의 정체성이 어떻게 박탈되고, 또 어떻게 기적적으로 구원받는지를 전달합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창작자(스필만)가 자신의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던집니다. 오늘날 대중문화 속에서 글이든 음악이든 한갓 소비의 대상인 오락물(amusement)로 치부되며 가볍게 소비되는 세태와 달리, 스필만에게 예술은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취미나 직업이 아닌 ‘존재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스필만의 연주할 수 없는 침묵은 예술의 부재가 곧 생명의 위협임을 보여줍니다. 창작자가 자신의 ‘생명줄’과 같은 창작물을 세상의 모든 파괴와 상실에도 불구하고 붙잡으려는 필사적인 의지는, 예술의 본질적 가치가 단순한 취미나 유희를 넘어선 생존과 구원의 영역에 있음을 강력하게 역설합니다. 특히, 스필만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등장하는 프레데리크 쇼팽의 녹턴 20번 C#단조(Nocturne in C-sharp minor, B. 49)는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스필만의 내면 상태와 영화 전체의 구원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 상징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도 음악 속에서 그 답을 한번 찾아볼까요?
과연 이 곡을 통해 우리가 받게 되는 내면의 떨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만일 당신이 작가라면, 이 음악을 어떻게 문자화시킬 건가요?
따라서 우리는 이 곡을 글로 분석하는 작가적 태도에 대해 고민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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