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라는 이름의 마법: 그 시절, 우리의 허슬(Hustle)
의리로 뭉친 '한 덩어리'의 기억
고교 시절, 나는 한 무리의 친구들과 붙어 다녔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일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책상 앞에만 붙어 있는 ‘범생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교에서 우리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노터치’ 그룹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누군가를 제압해서가 아니라, 우리끼리 세운 서슬 퍼런 규칙 때문이었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살자.” 그 투박한 말 한마디가 주는 무게감이 어찌나 컸던지, 누구도 우리 사이에 균열을 내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우리는 또 한 번 거창한 선언을 했다. “후회 없이 놀고, 후회 없이 공부하자.” 실행은 선언보다 더 뜨거웠다. 시험 기간이면 서로를 강제로 독서실에 처박았고, 시험이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서로를 거리로 끌어냈다. 열 명이 하루 종일 들러붙어 다니며 우리는 완전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 괴이한 집단은 졸업식 날 ‘모범상’까지 휩쓸었다. ‘열놀열공’의 결과는 달콤했다. 아버지의 양계장을 물려받아 훗날 부동산 거부가 된 친구 한 명을 제외하고, 우리 모두는 보란 듯이 대학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요즘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그땐 뭘 입던 꼭 달고 다녔다. 자랑하려고.)
나이트클럽을 뒤흔든 부산 촌놈들의 '비밀 병기'
당시 서울 사람들에게 부산 학생들은 그저 ‘촌놈’이었다. 상경한 우리는 몇 안 되는 인원이었지만 기세만큼은 당당했다. ‘열공열놀’에 ‘열시(열심히 시국 참여)’까지 더해진 뜨거운 나날이었다.
70년대 말, 대한민국은 디스코라는 거대한 종교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고향에서 올라온 ‘향토 장학금’을 아끼고 아껴 이태원과 강남의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 칙칙한 남자들뿐이었고, 파트너도 없었으며, 부킹 운은 더더욱 없었다. 잘생겨봐야 ‘사투리 못 속이는 촌놈’들이라 분위기를 잡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는 기회를 포착하는 사냥꾼들이었다. 가능성을 발견하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질이 빛을 발했다. 그 무기가 바로 시대의 아이콘, ‘허슬 댄스’였다.
셋만 있으면 판을 뒤집을 수 있었다. 청바지에 복장은 항상 동일하게. 남자 셋이 어깨를 맞대고 팔을 던지며 발을 미끄러뜨리는 순간, 플로어 주변이 환해졌다. 조명이 우리를 비춘 게 아니라, 우리의 움직임이 시선을 끌어당겼다. 어느덧 우리는 나이트클럽의 비공식 리더가 되어 있었다. DJ가 우리 동작에 맞춰 비트를 끌어올리면 분위기는 폭발했고, 그날 밤의 주인공은 모델 같은 청춘들이 아닌, 투박한 남자 셋의 허슬이었다. 나중에는 “학생들, 오늘 분위기 죽이네!”라는 칭찬과 함께 서비스 샴페인이 따라오곤 했다.
왜 우리는 질서에 압도당하는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허슬 댄스가 가진 ‘군무의 마법’ 덕분이었다. 본래 허슬은 남녀가 손을 맞잡고 추는 파트너 댄스다. 하지만 이 춤이 셋, 다섯, 열 명으로 확장되는 순간 전혀 다른 현상이 벌어진다. 개별적인 유희가 ‘집단적 질서’로 변환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출 때 허슬은 개인의 리듬이지만, 여러 명이 박자를 공유하는 순간 그것은 거대한 ‘패턴’이 된다. 관객은 이제 무용수 한 명의 얼굴이 아니라, 집단이 만들어내는 구조를 본다. 이 원리를 본능적으로 꿰뚫고 있는 것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장에서 ‘YMCA’에 맞춰 춤을 추며 군중을 하나로 묶어세우는 장면은, 질서가 어떻게 권위와 몰입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현대적인 사례다.
이 질서의 미학은 도처에 있다. 발레의 군무, 케이팝의 칼군무, 군악대의 행진, 심지어 농악의 진법 놀이까지. 우리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는 무형의 선과 흐름을 본다. 자연 또한 마찬가지다. 철새의 군집 비행이나 정어리 떼의 소용돌이는 생존을 위한 효율적인 알고리즘인 동시에, 그 자체로 완벽한 예술이다.
춤은 끝났어도 질서는 남는다
심리학은 우리가 왜 이토록 질서에 열광하는지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혼돈 속에서 규칙을 발견할 때 안도감을 느끼며, 예측 가능한 패턴 속에서 쾌감을 얻는다. 정렬된 움직임은 사회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강력한 신호. 소속감과 협력, 공동의 목적이 시각적 자극으로 치환된 것이 바로 군무다.
결국 그 시절 우리가 춘 허슬은 단순한 디스코의 유산이 아니었다. 질서가 어떻게 주목을 끌고, 그 주목이 어떻게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 짧은 드라마였다. 짝도 없이 남자들끼리 발바닥을 비비며 추던 그 어설픈 춤은, 사실 집단의 리듬에 몸을 싣고 소속과 질서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려 했던 인간의 오래된 본능이었다.
‘의리로 죽고 사는 부산 갈매기’들.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삶의 질서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을 친구들. 다시 생각해도 그 시절 우리의 허슬은, 참 눈부시게 잘 췄다.
70년대의 허슬 댄스는 이렇게~! 한번 배워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