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의 수난시대

사람이 아니라 진영을 사랑하는 사회에 대하여

by Itz토퍼

"편가르기가 생활 체육이 된 사회에서, '그냥 사람'으로 남기 위한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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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이면 금세 둘로 나뉩니다.


만일 그 둘 중 어느 편도 아니면, ‘수상한 아웃사이더’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셋이 모여도 둘로 나뉘고, 다섯이 모여도 또 둘로 나뉩니다. 이쯤 되면 편가르기는 한국인의 특기가 아니라 ‘생활 체육’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오징어게임이 그토록 재미있었는지.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도 이미 마음속에는 팀이 짜여 있습니다.

충성파와 개혁파, 그리고 “요즘 애들” 팀과 “라떼” 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처럼 마주 앉아, 같은 회의실에서 각자의 시대를 변호합니다.


어느새 나이를 묻는 질문은 생년이 아니라 진영을 묻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MZ입니까, 아니면 아직 라떼를 식히지 못한 쪽입니까.” 중간쯤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면, 양쪽 모두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습니다. 편을 들지 않는 사람은 늘 수상합니다.


지역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고향은 추억이 아니라 정치 성향이 됩니다.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은 안부가 아니라 분류 작업입니다. “아, 거기요?” 그 짧은 반응 속에 이미 수십 년 치 서사가 정리됩니다.


학교는 더 정교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사람을 만나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보다 어디를 나왔는지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심지어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묻더라는... 그래서 어쩌라고?) 졸업장은 ‘한국인 사용 설명서’인가요? 그 종이 한 장으로 노력, 성실, 가능성까지 요약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참 편리합니다. 많이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직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기업과 공무원은 철밥통 들고서 ‘정착’, 그 외의 직업은 환경을 해치는 1회용 용기처럼 ‘과정’입니다. 그래서 과정은 언제나 불안하고, 정착은 언제나 안정적이고 듬직하니 옳습니다. 프리랜서와 예술가는 아직 인생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처럼 “그래서 나중에는 뭐 할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미 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결혼은 성인 인증서입니다.

미혼은 아직 사회적으로 덜 익은 상태고, 기혼은 완성품 취급을 받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고생한다 하고, 낳지 않으면 이기적이라 합니다. 어느 쪽이든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매우 공평하게 손가락질합니다. 아무렴 손은 둘이니까요.


집 이야기가 나오면 분위기는 급격히 진지해집니다.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마치 서로 다른 기후대에 사는 사람처럼 대화합니다. “너는 집이 있어서 몰라.” “그래도 선택의 결과지.” 그 사이에서 구조는 늘 실종됩니다. 불평등은 성격의 문제로 요약됩니다.


정치는 이 모든 편가르기의 종합 예술입니다.

무슨 말을 했느냐보다 누가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같은 문장도 입을 바꾸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회색은 사치입니다. 회색을 말하는 순간, 당신은 양쪽 모두에게서 외면받습니다. 하지만 선거철에는 대환영입니다.


성격마저 나뉩니다.

말 많으면 적극적, 말 없으면 문제 있고 ‘숫기 없는’ 사람. 외향적이면 풍부한 사람, 내향적이면 결핍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조용함은 아직도 고쳐야 할 결함처럼 취급됩니다. 가만히 생각하는 사람은 늘 “그래서 네 의견은 뭐야?”라는 압박을 받습니다. 아직 생각 중이라고 답하면 고장 난 서비스 센터 전화통 취급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구분을 정확함이 아니라 편안함 때문에 선택합니다. 둘로 나누면 이해하기 쉽고, 편을 들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복잡한 사람을 만나는 대신, 간단한 분류표를 꺼내 드는 겁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혹시 우리가 나누고 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는 방식이 아닐까?”


편에 서 있으면 혼자가 아닙니다. 틀려도 나만 틀린 게 아니라 함께 틀릴 수 있고, 비난받아도 집단 속에 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묻습니다.


“당신은 어느 편입니까?”


그 질문이 너무 자연스러워진 사회에서, 아무 편에도 서지 않고 조용히 사람을 사람으로 보려는 일은 의외로 꽤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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