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기억과 니체의 아모르 파티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일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랑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 찾아옵니다. 마치 사랑의 조건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묻게 됩니다. 왜 사랑은 혼자만의 걸음을 이어가지 못하는 걸까요. 왜 사랑이 머무는 자리엔, 늘 고통이라는 이름의 불청객이 함께 따라다닐까요?
살다 보면 차라리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칼에 베인 상처는 약을 바르면 금방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참 끈질깁니다. 분명 사건은 끝났는데, 머릿속에서는 마치 방금 일어난 일처럼 아픈 기억이 반복 재생되곤 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이걸 '트라우마'라고 부릅니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그 사람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그 기억만 없으면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얼마나 보기 싫으면 이런 말이 나올까요. 하지만 살다 보면 이런 사람 분명 있답니다. 그래서 아예 그와의 기억을 송두리째 지워버리는 게 오히려 낫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겁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바로 이런 우리의 솔직한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아픈 기억만 골라서 지울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까?"
사실 이 영화 속 '기억 삭제 서비스'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셀프로 항상 하는 행동이니까요. 만일 누군가와 이별하고 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뭔가요? SNS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삭제하고, 메신저 차단 목록에 이름 올리고, 같이 듣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하곤 하죠. 손가락 몇 번 움직여서 상대의 흔적을 지우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현대판 '기억 삭제' 아닐까요? 영화는 이 익숙한 풍경을 통해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운명애)'라는 근사한 대답을 들려줍니다.
영화의 주인공 조엘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이 자신과의 기억을 지웠다는 걸 알고 복수하는 마음으로 똑같이 기억을 지우기로 합니다. 사실 이러한 과정은 사람들이 연애할 때 겪는 모습과 거의 비슷하죠. 처음의 설렘은 어디 가고,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 짜증이 나고,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만 내뱉던 그 지긋지긋한 '권태기'가 먼저 삭제됩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미운 기억들을 하나씩 지우고 나니, 그 뒤에 숨어있던 반짝이고 따뜻했던 사랑의 순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별을 고했음에도 왜 다시 그때를 회상하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서 드러나지 않나요. 밉고 나쁜 기억들을 몽땅 지우고나니, 남는 건 뭐죠? 좋은 것 밖에 없습니다. 결국 조엘은 그제야 깨닫습니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었어도, 그 사람과 함께한 이 모든 순간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구나" 하는 사실이 마음 한 구석에서 자꾸 그때를 떠오르게 합니다.
여기에 영화의 주제곡인 벡(Beck)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은 이 깨달음에 깊은 울림을 더합니다. 멜로디는 참 쓸쓸하지만 가사는 단호합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배워야 한다"는 말은, 사랑이 떠난 뒤의 고독과 상처조차 우리가 살아가며 반드시 배워야 할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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