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떼나 뗑깡을 부린다면

'바닥'의 찌끄래기는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요

by Itz토퍼

[머리말] 언어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단어에는 그 시대의 공기와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녹아 있습니다. 특히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갈등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은 그 사회의 도덕적 기준과 갈등 해결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곤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 정치권을 수식하는 수많은 단어 중 유독 눈에 띄는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순우리말의 질긴 고집을 담은 ‘생떼’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 나라의 아픈 병증에서 유래해 행패의 대명사가 된 ‘뗑깡’입니다. 언어의 뿌리는 다르지만, 이 두 단어는 현재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쌍둥이 단어가 되었습니다.


본 글은 이 두 단어가 가진 어원적 배경과 뉘앙스의 차이를 통해, 논리는 사라지고 오직 '이겨야 한다'는 강박만 남은 우리 정치권의 퇴행적 행태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웃음 뒤에 씁쓸함이 남는 이 비교가,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성숙한 토론의 장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마치 고집불통 쌍둥이를 키우는 부모의 심정과 같다. 이 쌍둥이의 이름은 ‘생떼’와 ‘뗑깡’이다. 겉보기엔 그저 고집을 부리는 모양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원만큼이나 이질적이고도 기막힌 정치적 ‘기술’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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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생떼’를 보자. 이는 순우리말 ‘생(生)’과 ‘떼’가 합쳐진 말로, ‘억지로 쓰는 떼’를 뜻한다. 우리 정치권에서 생떼는 주로 ‘논리 따위는 장식’인 분들이 애용한다. 분명히 본인이 잘못했는데도 “그건 관행이었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기는 모습은, 반찬 투정을 하며 식탁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대여섯 살 아이의 순수함(?)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생떼의 핵심은 ‘무대뽀(일본어 잔재)’ 정신이다. 근거는 빈약하지만 목소리는 크다. 일단 바닥에 누워 다리를 버둥거리면 누군가는 민망해서라도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생떼 정치의 철학이다.


반면 ‘뗑깡(てんかん)’은 조금 더 냉랭하다. 거기다 이것도 일본어 잔재다. 본래 ‘간질’이라는 병의 증세를 뜻하는 말로 일본어에서 유래해, 지금은 ‘억지스러운 행패를 부리는 모양새’를 일컫는다. 정치권에서의 뗑깡은 생떼보다 한 단계 진화한 형태다. 생떼가 그저 ‘내 맘대로 해줘!’라면, 뗑깡은 ‘내 맘대로 안 해주면 다 같이 죽자!’는 식의 파괴적 성향을 띤다. 예산안을 인질로 잡거나, 국회 문을 걸어 잠그고 열쇠를 삼켜버리는 식의 행태가 이에 해당한다. 이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상대의 숨통을 조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고도화(?)된 전략적 발작이다.


한결같이 일본어 잔재며, 관련이 있다.

어릴 적 부산에서는 이런 ‘잔재’, 즉 찌꺼기(표준어)를 ‘찌끄래기’라고 불렀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우리 정치인들이 이 두 가지를 아주 변증법적으로 조화시킨다는 것이다. 여당일 때는 야당의 비판을 ‘국정 발목 잡기용 뗑깡’이라 비난하고, 야당이 되면 정부의 정책을 ‘독단적인 생떼’라고 몰아세운다. 공수 교대가 이루어지면 어김없이 단어의 주어만 바뀐 채 똑같은 대사가 울려 퍼진다. 언어의 국적은 다르지만, 그들이 부리는 고집의 국적은 ‘권력’이라는 이름의 단일 국적이다.


국민이 진정으로 보고 싶은 것은 ‘정치’이지 ‘어린이집 재롱잔치’가 아니다. 생떼를 부리는 정치인에게는 엄격한 훈육(투표)이 필요하고, 뗑깡을 부리는 정치인에게는 치료(퇴출)가 시급하다. 언제까지 우리는 뉴스 채널을 틀 때마다 “나 이거 안 해!”, “저놈이 먼저 때렸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이제 그만 바닥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고 책상 앞에 앉길 바란다. 생떼와 뗑깡으로 채워진 일기장에는 결코 ‘민생’이라는 단어가 적힐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 큰 정치인이 생떼나 뗑깡을 부릴 때, 대한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정치 유치원 바닥의 찌끄래기는 어떻게 처리하죠?”


"같은 뜻인가?"



※ 이 글은 ‘비판’이며, ‘비평’이 아닙니다. ‘비평’에 대해서는, 브런치북 '위대해질 예정은 없습니다' (2026-1-18, 예정) '차가운 언어로 전하는 따뜻한 고백'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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