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무게에 덧씌워진 성별의 편견을 걷어내며
저녁 시간, 조금은 한가해진 날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고 텅 빈 집에 혼자 있느니, 산책이라도 할 겸 가까운 쇼핑센터로 향했다. 딱히 살 것이 없어도 그저 이리저리 매장을 돌아보며 거닐다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언제나 좋다, 이 은은한 커피 향.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며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으니, 그 소소한 여유가 꽤 괜찮게 느껴졌다. 그런데,
“교수님, 웬일이세요? 이 시간에.”
갑자기 나타난 제자였다. 학교를 떠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녀석의 호칭은 여전하다. 하긴, 이제 와서 나를 달리 뭐라 부르겠는가. 반가운 마음에 잠시 자리를 내어주고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다 보니, 녀석이 조심스레 한마디를 던진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왜?”
“교수님, 오늘따라 유독 외로워 보이세요.”
무심코 던진 그 한 방이 예상외로 매서웠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언제 이렇게 저녁 시간에 혼자 밖을 나돌며 카페 구석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나?’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단 한 번도 없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는 경우는 있었을지언정,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적은 없었다. 그것도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그제야 제자가 왜 그리 유난히 다정하게 굴었는지 이해가 갔다.
은퇴한 노교수(아직 '老'는 아니고 'No'라고 우겨보지만, 이는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다)가 홀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커피숍을 지키는 모습. 타인의 눈에는 그 광경이 꽤나 처량해 보였을 것이다. 외롭냐고 차라리 대놓고 묻지 그랬냐. 돌이켜보니 정말 외로웠던 것 같다. 이전 같으면 그럴 시간도 없었거니와, 혹여 시간이 났더라도 누구든 불러내 저녁이라도 먹자며 전화를 돌렸을 것이다. 어쩌면 내 안의 외로움이 들통날까 봐, 그 감정을 마주하기 두려워 애써 분주함을 가장해 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나의 '정체성'이란 녀석은 고향을 떠난 지 이미 오래다. 평생을 타국 생활로 점철된 이방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기 끝자락에 떠난 후 참 많이도 떠돌았다. 거주도 여행도, 단순한 '한 달 살기'가 아니라 최소 반년 이상은 몸을 붙이고 살았던 나라가 벌써 6개국이다. 비록 지금은 한 군데 제대로 정착해 살아가지만, 이 정착이 언제까지일지는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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