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 입국 심사대에서 마주한 AI에 대한 성찰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갑자기 필요한 자료가 생각난 것이다.
예전 연구실까지는 도보로 15분이면 도착한다. 연구실이 위치한 빌딩 출입구에 서자 카메라는 얼굴 인식만으로 문을 열어준다. 정해진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내가 갈 층수에 자동으로 불이 들어오고 문이 열린다. 연구실 입구에 다다라 지문을 인식하면 비로소 은퇴 전 내가 일하던 공간으로 들어서게 된다.
비록 은퇴를 했으나 당분간 나는 연구실의 데이터뱅크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이 모든 움직임은 AI에 의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보전되며 보고된다.
기술은 앞으로 더욱 정교해지고 일상은 더 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매끄러운 편리함 속에서 나는 문득 해외 여행시 반드시 거치게 되는 출입국 심사대를 떠올린다.
입국 심사장에서 사라진 풍경
해외에 나갈 때 사람들을 가장 긴장시키는 것은 단연 '입국 심사'이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공항에서 입국 심사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줄이 없다는 사실부터 익숙하지 않다. 왠지 낯설다. 사실 여행이란 본래 줄을 서기 위한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국부터 공항버스, 열차, 관광지 입장, 심지어 맛집조차 줄을 서야 한다. 하지만 입국 심사장에 그 풍경은 사라졌다. 대신 유리 벽처럼 생긴 게이트들이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며 빛을 내고 있을 뿐이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데이터
여권을 꺼낼 필요도 없다. 이미 제출한 정보, 지나온 동선, 구매한 항공권, 머무를 숙소, 과거의 여행 및 건강 기록까지, 나보다 먼저 도착한 나의 데이터가 게이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기다린다는 표현도 틀렸을지 모른다. '그들'은 이미 계산을 끝내고 나에게 최종 통보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게이트를 정상적인 걸음으로 통과한다. 가느다란 푸른 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짧은 시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수많은 규칙이 동시에 작동한다. 확률 모델이 돌아가고, 위험 점수가 조정되며, 수천만 건의 사례와 비교가 이루어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판단 과정은 이미 시작이 아니라 끝이 나 있다. 지하철 승하차보다 더 빠르고 편하다. 그저 걸었을 뿐인데 말이다.
질문이 사라진 자리, 수납되는 인간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사람에게 입국을 허락받은 것일까, 아니면 알고리즘이 허용한 범위 안에 안정적으로 배치된 것일까. 예전의 입국 심사대에는 질문이 있었다. 어딜 가나 식은땀 나게 하는 과정이었다. 왜 왔는지, 어디서 얼마나 머무를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언제 떠날 것인지. 짧은 대화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로 서로를 확인했다. 불완전했지만, 그 불완전함 덕분에 가끔은 설명의 여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설명하기 전에 이미 모델링된다. 말하기 전에 분류되고, 행동하기 전에 예측된다. 누군가는 더 공정해졌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실수가 줄었다고 말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정말 빨라서 좋다고 환호할지도 모른다.
틀린 말이 아니다. 미래의 알고리즘은 피곤하지도 않고, 감정에 흔들리지도 않으며, 동일한 기준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 기준은 누가 언제 만들었는가? 그리고 나는 그 기준이 만들어지는 자리에 있었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말은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
관리자로 전락한 인간과 보이지 않는 분류 체계
아마 사람은 여전히 어딘가에 앉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판단의 주체라기보다 시스템이 호출할 때 등장하는 관리자에 가깝다.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거나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생길 때 호출되는 존재인 것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인간을 만날 필요가 없다. 만나더라도 그는 잘 모를 것이다. 다시 컴퓨터를 켜고 앞서 AI가 분석한 자료들과 질문들을 찾아야만 할 테지만, AI가 이미 통과 혹은 보류를 결정했기에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그래서 여행자는 점점 더 빠르게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통과시켰는지는 점점 더 알 수 없게 된다. 이해받았다는 느낌 대신, 어딘가 거대한 분류 체계 속에 무리 없이 수납되었다는 감각이 남는다. "과연 나는 어떤 파일로 분류되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말이다.
편리함의 그림자: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
이러한 '묻지 않는 편리함'은 곧 우리 일상의 모든 문턱으로 번져갈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AI가 오늘의 컨디션에 맞는 식단을 제안하고, 퇴직한 연구원이 자료를 찾기 위해 빌딩 출입문을 나서는 동선조차 AI는 말없이 기록한다. 심지어 내가 어떤 업무를 맡아야 할지, 누구와 점심을 먹어야 할지까지도 데이터가 정해줄지도 모른다.
마치 투명하고 매끄러운 유리 상자 안에 갇힌 느낌이 아닐까. 밖이 훤히 내다보이고 필요한 모든 것이 적시에 공급되지만, 정작 내가 문을 열고 나갈 자유는 알고리즘이 설계한 동선 안에서만 허용되는 그런 상자 말이다.
모든 것이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자동화될 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불편함뿐일까, 아니면 나를 설명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마지막 권리일까.
결국 이 문을 여는 열쇠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사유'에 달려 있다. 우리가 스스로 질문하기를 멈추고 0과 1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는 순간, 매일 아침 통과하는 연구실의 출입구나 입국장의 매끄러운 게이트는 더 이상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영원히 규정하고 가두는 시스템의 입구가 될 것이다.
0과 1 사이에서 질문이 사라진 후, 우리가 마주할 세계의 문은 과연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그 문 너머의 주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기록되는 데이터로 남을 것인가.(계속)
■ 2026년 2월 19일, 브런치북 '별 것 아닌 것들의 쓸모' 10부작 미니시리즈 《0과 1 사이의 사유 세계》의 최종편 '0과 1 사이 사유의 세계로 들어온 자율적 AI'가 발행됩니다.
그리고 2026년 2월 21일(토)부터 브런치북 '별 것 아닌 것들의 쓸모' 5부작 미니시리즈 《경계의 두께, 1mm》가 발행됩니다.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