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에 도달한 자본열차와 설국열차의 기묘한 일치
여러분은 학창 시절, 어떤 과목을 가장 싫어했나요?
고교 시절, 언제부터인가 매주 수요일, 교문 앞에는 전교생의 마음을 설레게 한 아주 예쁜 여학생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한눈에 봐도 빛이 나던 그녀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던 어느 날, 마침내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우리 학교 화학 선생님의 딸이었습니다.
그 순간, 전교생의 환호는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듯 침묵과 외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화학이라는 과목을 끔찍이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과목이 싫으니 선생님도 싫었고, 그 선생님의 딸조차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린 것이죠. 그렇게 저에게 화학은 평생 곁을 주고 싶지 않은 불통의 학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저는 그 싫어하던 화학 용어 하나를 빌려 우리 시대의 비극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화학에는 '임계점(Critical Point)'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냄비 속의 물이 99도까지는 액체로 버티다가 100도가 되는 찰나에 완전히 다른 성질인 수증기로 변해버리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 지점을 뜻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잔잔한 수면 같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한계치까지 차올라 바늘 끝 같은 작은 자극 하나에도 시스템 전체가 폭발하거나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상태입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이 터지기 직전의 그 긴장감과도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거대한 경제 시스템은 과연 안전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이미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연료 삼아 폭발 직전의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는 것일까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바로 이 임계점에 도달한 사회를 좁고 긴 기차 안에 압축해 놓았습니다. 기차 안의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꼬리 칸 사람들이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으로 겨우 생명을 연명하는 동안, 앞 칸의 사람들은 신선한 스테이크와 최고급 와인을 즐기며 영원할 것 같은 파티를 벌입니다. 이들을 가르는 것은 오직 '어느 칸에 올라탔는가'라는 우연한 위치뿐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커티스는 이 지옥 같은 불평등을 끝내기 위해 엔진을 향해 진격합니다. 하지만 그가 기차의 심장부에서 마주한 진실은 냉혹했습니다. 기차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부품처럼 소모되어야만 하며, 앞 칸의 화려한 번영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생존을 담보로 한 구조적 폭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 참혹한 상상은 더 이상 스크린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의 '자본 열차'는 영화보다 훨씬 빠르고 잔인한 속도로 가속하고 있습니다. 엔진 칸이 뜨겁게 달궈질수록 꼬리 칸으로 향해야 할 온기는 자취를 감추고, 칸과 칸 사이의 문은 더욱 견고한 철벽이 되어갑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작금의 지표들은 이 열차가 이미 사회적, 도덕적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 접하게 된 뉴스 한 토막은 이 비극이 허구가 아닌 현실임을 뼈아프게 깨닫게 합니다. 전 세계 인구 4명 중 1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 곁에, “상위 12명의 부가 하위 40억 명의 자산보다 많다”는 소식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아니 영화보다 더 잔혹한 현실입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이 발표한 연례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자산 불균형은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상위 12명의 슈퍼 리치들이 보유한 자산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40억 명의 자산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고, 그들의 재산은 지난 1년 사이 무려 16.2%나 급증했습니다. 대다수 인류가 겪는 경제적 고통과 정체 속에서, 엔진 칸의 에너지만 독점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마주한 '부의 임계점'입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또 다른 방면으로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내었군요.
글을 맺으며 생각합니다. 고교 시절엔 단순히 선생님이 싫어 화학을 멀리했지만, 이제 이 나이가 되어 화학을 싫어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우리 삶의 터전이 무너지기 직전의 그 불길한 징후를 설명하는 단어, '임계점'마저도 결국 화학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멈추지 않는 열차에서 제대로 내릴 수나 있을까요?
(다음 편에 계속) '우리는 이 열차에서 내릴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