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열차에서 내릴 수 있는가

엔진이 멈춘 폐허 위에서 마주한 북극곰, 그리고 대답 없는 질문들

by Itz토퍼

[1] 12명의 엔진, 40억 명의 꼬리 칸에서 이어진 글


지난 글에서 우리는 '임계점'에 도달한, 영화가 아닌 실재하는 ‘자본열차’를 이야기했습니다.


12명의 엔진 칸과 40억 명의 꼬리 칸이라는 비현실적인 숫자의 대비,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한 엔진의 잔인한 진실까지입니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일까요? 영화 《설국열차》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 그 대답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기차는 폭파되었습니다.


시스템을 유지하던 유일한 동력이자, 동시에 모두를 가두었던 감옥인 '엔진'이 멈춘 것입니다. 그리고 연기가 자욱한 폐허 위로 살아남은 두 아이가 걸어 나옵니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따뜻한 낙원이 아니었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차가운 설원, 그리고 저 멀리서 그들을 응시하고 있는 한 마리의 북극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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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우리에게 아주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기차라는 견고한 시스템이 무너진 뒤, 우리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것은 설국열차의 허구가 아닌, 우리가 마주한 또 다른 참혹한 현실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껏 기차의 부조리를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기차가 주는 최소한의 '생존'이라는 안락함에 길들여져 있었는지 모릅니다. 꼬리 칸의 비참한 단백질 블록일지언정, 그것조차 없으면 당장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를 엔진의 노예로 묶어두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해방은 엔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엔진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이제 우리는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야만 합니다.


“기차 밖의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기차를 부수는 파괴가 아니라, 엔진이 독점했던 열기를 40억 명의 손발로 나누어주는 '재분배의 온기'를 뜻합니다. 12명의 슈퍼 리치가 1년 만에 재산을 16.2% 늘리는 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공공의 안전망과 상생의 가치를 복원하는 것이 바로 기차 밖의 풍경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잔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세계 최고의 권력을 거머쥔 이는 자국만을 위한 서슬 퍼런 관세 정책과 배타적인 장벽을 높이고 있습니다. 누가 시작했는지조차 희미해진 내전 속에서 아이부터 노인까지 무참히 학살되고, 형제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눕니다. 고향을 잃은 난민들은 세계를 떠돌고, 가난에 찌든 이들은 쓰레기 소각장에서 폐기물과 하나가 된 채 연명합니다. 길거리에는 약물에 취해 집을 잃은 노숙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갑니다.


이 모든 아비규환의 배후에는 12명의 슈퍼 리치가 40억 명의 생존권을 거머쥐고 있다는 거대한 모순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린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서 항상 고개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모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우린 이미 거대 ‘자본열차’의 다음 승객이 될 것입니다.


이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요?

그 가능성은 실재하긴 하는 걸까요?

누가 이 거대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 대답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최우선적으로 엔진 칸에만 집중되던 자본의 흐름을 꼬리 칸의 교육, 의료, 환경이라는 실질적인 삶의 토양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사회적 밸브'를 다는 일일 것입니다. 12명의 독주를 멈추게 할 공정한 과세와 40억 명의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 이것이 기차 밖에서 우리가 함께 지어야 할 새로운 공동체의 설계도입니다.


현실 속 '16.2%의 자산 급증'이라는 숫자는 우리에게 달콤한 엔진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소리에 취해 기차 밖을 보는 법을 잊는 순간, 우리는 기차와 함께 공멸할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영화의 결말에 등장하는 북극곰은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차 없이도 생명이 숨 쉬고 있다는 증거이자, 인간 존엄이 자본의 수치보다 우선시 되는 '상식의 세계'로의 복귀를 상징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기차가 없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집단 최면에 걸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기차 문을 여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일입니다. 밖은 춥고, 길은 보이지 않으며, 우리를 보호해 줄 철갑도 없습니다. 그러나 40억 명이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버티는 동안 단 12명이 모든 열기를 독점하는 구조라면, 그 기차는 이미 멈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글을 맺으며, 다시 한번 싫어하던 화학 선생님의 딸을 떠올려 봅니다. 그녀가 예뻤던 이유는 화학 선생님의 딸이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하나의 고귀한 인격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화학이라는 과목이 싫다는 이유로 그녀를 외면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도 자본이라는 거대 시스템에 매몰되어 40억 명의 구체적인 삶 하나하나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12명을 위해 40억 명을 소모하는 열차 안에서 영원히 궤도를 돌 것인지, 아니면 설령 춥더라도 문을 부수고 북극곰이 기다리는 대지로 걸어 나가 새로운 길을 낼 것인지 말입니다. 12명의 엔진을 끄고 40억 명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일, 그것이 바로 기차가 멈춘 다음 날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엄중한 과제입니다.


저는 지금 설국열차라는 영화가 아니라, 오늘 이 지구상에 실재하는 ‘자본열차’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 열차를 멈추고 새로운 질서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미 그때를 놓쳐버린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이 열차는 언제쯤에야 스스로 멈추게 될까요?


분명한 것은 언젠가 그 열차는 멈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열차는 더 이상 달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걸음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 무거운 질문들에, 당신은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나요?”



[에필로그]


지금 인류는 가장 참담한 현실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그 비극을 자각하지 못한 채 안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자본열차'의 결말이 영화보다 더 처참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기차 안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시스템의 유효 기간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류의 파멸 가능성을 경고하는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는 2026년 1월 현재, 작년보다 1초 앞당겨진 ‘자정 89초 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인류를 끝낼 마지막 방아쇠는 무엇일까요? 하늘을 가를 핵무기일까요, 아니면 12명의 탐욕이 40억 명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그 순간일까요? 시계 바늘은 멈추지 않고 움직입니다. 우리가 이 열차의 문을 열지 않는다면, 시계는 결국 자정에 닿고 말 것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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