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과 열린 데이터의 대화
“나는 살면서 AI를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글쎄요, 최소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라면 그런 분은 계시지 않을 겁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이미 AI가 추천해 주는 영상을 보고, AI가 보정해 준 사진을 올리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블로그나 플랫폼에 글을 올릴 때 맞춤법 검사 역시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단순한 오타 교정을 넘어 문맥까지 짚어내는 요즘의 도구들은 그 핵심 기술 대부분이 AI에 의존합니다. 이쯤 되면 우리 삶은 AI와 ‘결혼’까지는 몰라도, 꽤 진한 ‘썸’ 정도는 확실히 타고 있는 중이라고 봐야겠죠.
그런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평행이론이 보입니다. 우리 조상들이나 지금의 우리나, 낯선 무언가가 눈앞에 들이닥치면 일단 빗장부터 걸어 잠그고 보는 ‘보수적 본능’이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말, 조선의 조정이 밀려드는 외래 문물과 서구 열강의 파고 앞에서 “이건 사악한 학문이야!”라며 척화비를 세웠던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당시엔 그게 나라를 지키는 최선의 방패라고 믿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대의 급류를 타지 못해 더 큰 파도에 휩쓸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짚어봐야 합니다. 쇄국의 상징인 흥선대원군이 사실 외래 문물을 꽤나 ‘선택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입니다. 서양식 무기와 군사 기술에는 눈독을 들였고, 서적이나 천문 지리 도구, 농업 기술 등 실익이 있는 지식은 반겼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빗장을 걸면서 뒤로는 필요한 실익을 챙겼던 그 모습, 어딘가 지금 우리의 ‘자기모순’과 닮아있지 않나요?
최근 시행된 ‘AI 기본법’을 보고 있으면 자꾸 그때 그 ‘척화비’가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생성형 AI로 만든 광고물에 “이건 AI가 만들었습니다”라는 꼬리표를 꼭 붙이라는 이 정책, 왠지 무너지는 둑을 손가락 하나로 막아보려는 위태로운 몸부림 같지 않나요? 이미 광고업계에서는 CG나 VFX 기반의 영상 제작이 보편화되어 있는데, “기술적 보정은 괜찮고 AI 생성은 안 된다”라는 이중잣대는 마치 21세기판 ‘현대적 척화비’를 세우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합니다.
이런 ‘모순적 방어 수단’이 가장 웃프게 드러나는 곳은 지성의 전당인 대학가입니다. 요즘 교수들 중 많은 이들이, 연구실에서는 AI로 데이터를 추출하고 최신 기술을 연구하느라 누구보다 바쁩니다. 그런데 일부 교수들은 정작 본인은 기술이라는 스텔스기를 타고 비상하면서, 제자들에게는 “걸어서 가라”며 AI 활용을 금기시하는 이 상황은 참으로 지독한 모순입니다. 제대로 된 활용법이나 윤리를 가르치는 대신 족쇄부터 채우니, 학생들은 기술을 양지에서 배우는 대신 교수님의 눈을 속이는 ‘음성적 고수’가 되어갑니다.(그런데 교수들은 또 이 음성적 고수를 잡는 양성적 고수가 되어가죠. 바로 이게 '모순'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단순한 '두려움'이나 ‘모순’이 아닙니다. 오히려 AI를 이용해 자신의 부족한 역량을 화려하게 포장하고 결과물을 미화시키려는 강렬한 '유혹'입니다. 심도 있는 고민과 정교한 연구의 과정을 생략한 채, AI가 뱉어낸 매끄러운 결과물을 자신의 통찰인 양 내세우고 싶은 마음입니다. 땀 흘려 쌓아 올린 실력보다 ‘그럴듯해 보이는 화려한 포장지’가 더 대접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느덧 스스로를 속이는 유혹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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