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자신과 모든 작가님들에게 보내는 서신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던 날, 혹은 새로운 직장에 첫발을 내딛던 날의 설렘을 기억하시나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그 뜨거운 마음이 100일쯤 지나면 신기하게도 조금씩 사그라들곤 합니다. 글 한 줄 쓰는 게 숙제처럼 무겁게 느껴지고, 주변과의 사소한 마찰조차 마음의 큰 짐이 되는 '3개월의 고비'가 찾아온 것이랍니다.
사실 이 시기는 당신의 열정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과 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내보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심리학을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100일이라는 시간 뒤에 숨겨진 마음의 지도를 펼치고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 기특한 일입니다"
우리의 뇌는 참 영리합니다. 새로운 자극에 매번 크게 반응하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버리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그 자극을 '일상'으로 받아들여 에너지를 아끼려 노력한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적응'이라고 부릅니다.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를 떠올려 보세요. 처음 출항할 때는 탁 트인 수평선과 부서지는 파도만 보이지만, 100일쯤 지나면 비로소 배 안의 낡은 부품이나 옆 사람의 세심한 표정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지금 겪는 갈등은 마음이 식어서라기보다, 당신이 이 환경에 그만큼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이벤트가 아닌 '삶'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왔다는 대견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주변에 대한 미안함, 당신이 충분히 몰입했다는 증거랍니다"
100일쯤 되면 글쓰기나 새로운 업무에 온 신경을 쏟느라 정작 가장 소중한 이들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가족에게 낼 시간을 아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때, 혹은 함께 있으면서도 머릿속으론 다음 글감을 구상하고 있을 때 밀려오는 미안함은 마음을 참 무겁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미안함은 당신이 그만큼 무언가에 진심을 다해 '몰입'해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비유하자면,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돛을 높이 올리느라 배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일 여유가 부족했던 것이지요. 그 미안함을 당신을 갉아먹는 죄책감으로 두기보다, 이제는 잠시 돛을 내리고 곁에 있는 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균형의 시간'으로 삼아 보시는 건 어떨까요? 가장 가까운 이들의 지지는 당신의 항해를 가장 오래 지속시켜 줄 힘이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멈춘 게 아니라, 힘을 모으는 중일 겁니다"
열심히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답니다. 이를 '플래토(Plateau)'라고 합니다. 성장은 계단처럼 쑥쑥 오르는 구간도 있지만, 평평한 길을 한참 걸으며 숨을 골라야 하는 구간도 반드시 필요하답니다.
마치 물이 끓기 직전의 상태와 비슷할지도 몰라요. 99도까지 올랐을 때,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물속에서는 기체로 변하기 위해 가장 치열하게 에너지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정체감은 멈춰 있는 게 아니라, 다음 단계로 껑충 뛰어오르기 위해 '도약을 위한 온기'를 품고 있는 소중한 준비 시간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 고개를 조금 더 편안하게 넘기 위해,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을 보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완벽이라는 짐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답니다. 초기에는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어 기준을 높게 잡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멋진 결과'를 내는 것보다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합니다. 세 줄짜리 짧은 메모라도 좋으니,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만의 작은 기쁨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의 반응이나 칭찬은 금방 익숙해져 버리곤 하죠. 대신 글을 쓸 때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 혹은 일을 끝내고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처럼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작은 보람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타인의 시선이라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당신만의 '안전한 항구'를 만드는 소중한 과정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100일, 당신의 시스템이 단단해지는 시간
옛이야기 속에서도 100일은 곰이 사람이 되고, 아기가 세상에 온전히 뿌리내리는 기적의 시간으로 전해지곤 합니다. 실제로 우리 몸의 세포가 교체되는 주기도 3개월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100일을 버텼다는 건, 이제 이 일이 당신의 삶 속에 아주 깊숙이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답니다.
지금 겪는 혼란은 당신을 가로막는 벽이 아닐 겁니다. 오히려 더 넓은 대양으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일 뿐입니다. 뜨거운 열정만큼이나 귀한 것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묵묵히 키를 잡고 있는 당신의 평온한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지금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답니다. 그 100일의 고개를 넘고 있는 당신의 모든 걸음을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