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연기만 남은 자유의 횃불인가

'정당한 사살'과 '국가적 학살', 길 잃은 인권 수호의 가치

by Itz토퍼
unnamed (7).jpg by Gemini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거리가 다시 한번 핏빛으로 물들었다. 최근 이민국(ICE)과 연방 요원들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37세의 간호사 알렉스 프레티와 30대 여성 르네 굿의 비극은 우리가 알던 '자유와 인권의 보루'로서의 미국의 위상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부는 이를 '정당방위'라 명명하며 요원들을 옹호하지만, 시민들이 목격한 것은 합법적 권리를 가진 이들을 향한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사건의 면면은 충격적이다. 알렉스 프레티는 참전 용사들을 돌보던 간호사였으며, 합법적인 총기 휴대 허가증을 가진 시민이었다.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그는 요원들에게 위협을 가하기보다 오히려 바닥에 넘어진 여성을 보호하려 했고, 총격 직전에는 손에 총이 아닌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또 다른 피해자인 르네 굿 역시 세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자신의 차량 안에 있다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숨졌다.


총을 든 요원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신체 부위에 총구를 겨누었을까? 총을 든 요원이든 군인이든, 적이 아닌 이상 이토록 치명적인 조준을 과연 할 수 있는 것인가? 총을 다루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묻고 싶은 거다. '사살'인가, '학살'인가? 정당방위라니.


정부는 이들이 '폭력적으로 저항'했으며 '요원의 생명을 위협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장의 영상과 정부의 해명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사살'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잔혹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살'은 범죄나 교전 상황에서의 개별적 행위를 뜻하지만, 저항 능력이 없거나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국가가 압도적인 화력을 반복적으로 쏟아붓는다면, 그것은 집단적 존엄을 짓밟는 '학살'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미국은 헌법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총기 소지 권리를 신성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들은 그 권리가 '누구에게' 적용되는지에 따라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지한 시민이 국가 요원의 총구 앞에서는 '사살되어 마땅한 위협'으로 둔갑한다면, 미국이 자랑하는 헌법적 가치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비극을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희생자에 대한 애도나 명확한 진상 규명보다는 '정당방위'라는 방패 뒤에 숨어, 이를 비판하는 지자체와 시민들을 '반란 세력'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는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상에서 특정 시민들을 배제하고, 공권력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인권은 국경이나 체류 자격, 혹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선별적으로 주어지는 혜택이 아니다. 무고한 시민의 피가 거리에 뿌려지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가 거짓을 말할 때 그 나라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지금 미국이 겨누고 있는 총구는 범죄자가 아니라, 그들이 수호하겠다고 맹세한 인권과 자유 그 자체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거리에 선 시민들이 외치는 "ICE out(이민국 퇴출)"이라는 구호는 단순한 정책 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더 이상 우리를 죽이지 말라는, 인권을 수호하는 국가다운 국가로 돌아오라는 처절한 절규다.


자유의 여신상이 든 횃불이 부끄러움에 꺼지기 전에, 미국은 이 잔혹한 '사살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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