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마지막 영토: 계산하는 기계와 망설이는 인간
요즘 법정 뉴스를 보다 보면, 자주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게 정말 우리가 바라던 정의인가?”
내란 재판의 긴박한 장면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들려오는 관세 전쟁과 이민자 단속 소식. 사건의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뉴스 화면을 끄고 나면 결국 하나의 근원적인 질문이 우리를 붙잡습니다.
“저 법 집행은 과연 정당한가?”
이 질문은 법을 몰라서 던지는 무지(無知)의 소산이 아닙니다. 오히려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합리를 너무 많이 봐온 시대가 내뱉는 피로 섞인 탄식입니다. 우리는 법치라는 명분 아래 수많은 판결을 목격합니다. 그 과정이 진실로 공정한지, 아니면 권력과 이해관계가 빚어낸 정교한 조각품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의심의 끝에서 우리는 종종 허탈한 무력감을 마주합니다.
파렴치한 범죄자에게 내려진 가벼운 형량,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집행유예, 정치적 계산이 스며든 듯한 판결을 마주할 때마다 대중의 입에서는 날 선 비난이 튀어나옵니다.
“차라리 감정도 없고, 전관예우도 모르는 AI가 판사를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이 말은 단순한 냉소를 넘어선 ‘구조 신호’입니다. 시민들이 공동체의 마지막 보루인 법의 공정성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터져 나오는 절박한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AI는 압도적입니다. 수천만 건의 판례를 순식간에 학습하고, 비슷한 사건들 사이에서 통계적으로 가장 오차가 적은 형량을 도출해 냅니다. 기분도, 편견도, 연고도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판관(判官)입니다. 우리가 늘 불평해 왔던 ‘판결의 자의성’을 단번에 해결해 줄 구원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은 정답이 정해진 수학 문제지가 아닙니다. 법조문에는 언제나 여백이 따라붙습니다. ‘상당한 이유’, ‘사회 통념상’, ‘중대한 과실’. 이 모호한 표현들은 법의 결함이 아닙니다. 인간의 삶이 너무나 입체적이어서, 미리 하나의 답으로 박제해 둘 수 없다는 겸허한 인정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법은 판사에게 최후의 질문을 던집니다.
“이 서사(敍事)를, 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당신은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같은 절도라 해도 굶주린 자의 빵 한 조각과 탐욕으로 가득 찬 금품은 그 무게가 다릅니다. AI는 그 차이를 수치로 분류할 수는 있지만, 그 행위가 공동체에 남긴 고통의 파장과 시대적 맥락까지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AI와 인간 판사의 결정적인 차이는 정확도가 아니라 ‘책임’의 유무에 있습니다. 판결문 맨 아래에 적히는 판사의 이름은 단순한 행정적 절차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실존적 선언입니다.
“이 판단으로 인해 벌어질 모든 결과를, 나라는 인간의 이름으로 감당하겠다.”
판결 이후에도 마음이 무거워 잠 못 이루고, 어쩌면 오늘 밤 누군가도 그러하고 있을지. 하지만 AI는 자신의 결정을 평생의 업보로 안고 살아가는 윤리적 무게를 알지 못합니다. “법적으로는 옳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라는 문장은 오직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존재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정의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상흔을 남깁니다. 그 상처 위에 서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판단이 필요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 때, 정의는 비로소 성립합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관리 시스템’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AI를 법정에서 축출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AI는 인간 판사를 비추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편견을 폭로하고, 판결 간의 불균형을 경고하며, 방대한 판례를 정리해 판단의 토대를 단단하게 만드는 도구로서 AI는 필수적입니다.
다만 마지막 순간, 의사봉을 두드리는 손만큼은 여전히 인간의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판사에게 기대해야 할 것은 기계 같은 무결함이 아니라, 기계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망설임’입니다. “법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라고 숨는 대신, “충분히 고뇌했고, 그 끝에서 이 판단을 선택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정의는 완벽해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려는 태도 때문에 신뢰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AI는 정의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 앞에서 잠시 멈춰 서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그 짧은 망설임 속에, 아직 우리가 포기하지 않은 정의의 마지막 영토가 남아 있습니다.
[비평적 후기]
오늘 전해진 어느 판결을 보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대중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결과 앞에서, 그 판사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법전보다도 AI가 비춰주는 ‘정직한 거울’이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