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태평양 건너간 내 돈,
물가가 되어 돌아오는가

지표의 호황과 장바구니의 침묵: '서학개미'의 행진이 남긴 그림자

by Itz토퍼
※ 이 글은 경제를 설명하려는 분석문이 아니라, 환율과 물가를 마주하며 작가가 느낀 체감과 사유를 옮긴 기록입니다. 따라서 경제 현상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습니다.

지금의 원·달러 환율을 보면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히는 듯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특히 해외 체류자나 유학생 자녀를 둔 부모처럼 원화를 달러로 바꿔야만 하는 이들에게 현재의 환율은 일상의 재난에 가깝습니다. 우리에게 환율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져다 준,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시나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원·달러 환율은 800원대 내외에서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자 환율은 1,900원대 후반까지 수직 상승하며 우리 경제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았습니다.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며 1,100~1,200원대로 안착했지만, 끝내 위기 이전의 '세 자릿수' 환율로는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높은 벽은 지금까지도 우리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경제는 또 다른 기로에 서 있습니다. 환율이 어느새 1,400~1,500원선을 오르내리는 것이 위기가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죠. 국가적인 부도나 경제 위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환율은 이토록 완강하게 높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까요?


요즘 뉴스 화면은 유난히 화려합니다. “국내 증시 사상 최고치 경신”, “반도체 수출 호조”. 자막은 번쩍이고, 그래프는 매끄러운 우상향 곡선을 그립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좀처럼 가볍지 않습니다. 계산대 앞에서 느껴지는 체감 물가는 뉴스의 숫자와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식 시장은 웃고 있는데, 장바구니는 왜 이토록 수심이 가득할까요?


이 묘한 풍경의 배경에는 돈의 ‘거주지’가 있습니다. 사람은 한국에 살고 있지만, 자산은 미국에 거주 중인 ‘금융 이중생활’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과 달러 자산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연쇄 반응은 우리의 일상을 소리 없이 흔들고 있습니다.

19264d16-dee4-4e0e-8531-238292a0d4b4.png by ChatGPT

글로벌 트렌드: 무너지는 '자국 편향'의 벽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현상이 비단 한국만의 풍경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과거 투자 이론에서는 익숙한 자국 주식에 집중하는 '자국 편향(Home Bias)'이 일반적이었으나, 이제 전 세계 투자자들은 국경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과거 일본의 개인 투자자들은 낮은 금리를 활용해 외환 거래를 하는 '와타나베 부인'이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 정부의 비과세 저축 제도(NISA) 개편과 엔저 현상이 맞물리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미국 S&P 500 지수나 전 세계 주식(All-Country)에 투자하는 비중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유럽의 젊은 층은 '네오브로커' 앱을 통해 미국 기술주를 쇼핑하고, 중국의 하이와이(해외직구족) 투자자들 역시 미국 상장 기업에 열광합니다. 정보의 비대칭이 사라진 지금, "내가 사는 나라의 기업"보다 "세상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을 찾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글로벌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주주 친화적인 정책과 압도적인 성장성을 갖춘 미국 시장이 블랙홀처럼 전 세계의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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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입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에도 작은 위로와 빛이 스며들길 바라며, 제 속의 글무리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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