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부터 정해진 ‘선택의 여지’, 그 불평등한 게임의 법칙
필자는 지난 글 「01-태평양 건너간 내 돈, 물가가 되어 돌아오는가」를 통해 우리 사회가 당면한 경제적 위기를 짚었다. 누군가에게는 지표상의 수치나 '사소한 변동'일지 모를 이 문제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걸린 절박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자본의 논리는 이토록 비정하다.
과거 우리 사회에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법 앞의 평등이 자본 권력 앞에 무너지는 현실을 꼬집은 말이다. 작금의 정부가 검찰 개혁을 부르짖는 이유도 그 불신의 뿌리가 깊기 때문일 터다. 하지만 개혁을 외치는 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주머니 사정부터 살피며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의 비극을 관통하는 새로운 문장을 제안하고자 한다. 바로 “유전득전(有錢得錢), 무전축전(無錢逐錢)”이다. 돈이 돈을 낳고(得錢), 가난이 생존을 쫓게 만드는(逐錢) 굴레다. 이 구조 안에서 대한민국은 과연 공정의 문턱을 제대로 넘고 있는가?
돈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부가 증식되는 시스템 위에 올라타 있다. 여기서 '돈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먹고살 만한 수준을 뜻하지 않는다. 깃털 몇 개가 빠져도 비행에 지장이 없는 새처럼, 자본을 굴려 불확실성을 통제할 수 있는 여유를 말한다. 반면, 생존의 경계선에 선 이들은 멈추는 순간 추락한다. 이들에게 삶은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는 여정이 아니라, 오로지 돈을 좇아 달려야만 현상이 유지되는 가혹한 트랙이다. 돈의 위치가 달라졌다. 돈은 이제 단순한 교환 수단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결정하는 절대적 권력이 되었다.
이 여덟 글자는 단순히 자산 규모의 격차만을 말하지 않는다. 한 인간이 생애 전체에 걸쳐 누릴 수 있는 ‘선택의 폭’과 ‘존엄의 깊이’가 자본에 의해 어떻게 잠식당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서울의 비좁은 원룸에서 홀로 중년을 보내는 일용직 노동자 K 씨(54)의 사례는 수사적 비유가 아닌 잔혹한 실재(實在)다. 그에게 식사는 영양 섭취가 아니라 허기를 지우는 행위일 뿐이다. "건강을 위해 무엇을 먹으라"는 조언은 배부른 자들의 사치스러운 훈수에 가깝다. 편의점 도시락과 라면으로 연명하는 청년들의 일상 또한 오늘 우리 사회의 서글픈 현주소다. 1인 가구의 높은 조기 사망 위험은 가난이 이미 생존의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증명하는 슬픈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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