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트 잇츠토퍼의 세계』는 내면의 목소리와 상상,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다시 불러와 미래로 보내는 기록이다. 이 글들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방향을 뒤틀어 현재의 나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하나의 서사 실험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감정과 기억은 재배열되고, 아직 오지 않은 장면들은 이미 경험된 것처럼 쓰여진다. 나는 나를 설명하기보다 다시 쓰고, 지나간 순간을 복원하기보다 새로운 의미로 편집한다. 이 브런치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시간을 살아가는가, 아니면 시간을 다시 쓰고 있는가.” - 브런치스트, Itz토퍼
작은 나무 서랍을 열 때마다 조용히 스며 나오는 커피 향이 있다.
시간에 닳아 윤기를 잃은 30년 된 핸드밀. 손잡이는 여러 번 빠졌다 다시 끼워졌고, 몸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더 이상 매끈하지도, 반짝이지도 않지만 그 안에는 요즘의 어떤 새 기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또렷한 리듬과 기억이 담겨 있다.
낯선 곳에서 보낸 나의 지난 시간 역시 이 핸드밀의 몸체처럼 여기저기 깎이고 파였을 것이다.
어쩌면 이 낡은 도구는 나를 비추는 가장 정직한 거울인지도 모른다.
아침은 늘 그 핸드밀로 시작된다.
원두를 세 스푼 덜어 넣고 손잡이를 천천히 돌리면 사각사각, 마찰의 소리가 고요한 서재 안에 잔잔히 번져간다. 빠르지 않고 일정하지도 않은 그 소리. 그래서 더 좋다.
그 리듬에는 오늘 하루를 여는 나만의 속도뿐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긴 여정의 무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버튼 하나로 순식간에 가루가 되는 커피와는 달리, 이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존재하는 '느린 정거장'이자, 침묵의 공간 위에 무언가를 새기기 전 마음을 가다듬는 경건한 준비가 된다.
누군가는 묻기를,
"그 불편한 것을 왜 아직도 고집하나요?"
문득 생각해 본다. 불편함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때로는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는 이런 사소한 불편함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효율과 속도만을 강조하는 세상 속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는 작은 '심리적 완충 지대'가 된다.
편리함은 과정을 지워버리고 결과만을 남긴다. 하지만 손으로 직접 돌리는 이 느린 행위는 감각을 깨우고 내 안의 빈 곳을 천천히 채운다. 단단한 원두가 부드러운 가루로 변해가는 순간, 손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저항은 조용히 속삭인다.
나는 여전히 내 주변의 환경을, 그리고 내 삶의 결을 내 힘으로 직접 빚어낼 수 있는 효능감을 가진 존재라고.
30년 전, 새로운 시작의 기로에서 만났던 이 핸드밀의 설렘은 아직도 이 안에 생생하다.
당시의 매끄러운 기계가 주지 못했던 섬세함을 찾아 핸드밀을 선택했던 것은, 내 삶의 세밀한 부분까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손목의 힘을 조절하며 나만의 입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낯선 풍경 속에서 나만의 질서를 세워가던 고단하지만 정직했던 시간의 비유이기도 하다.
이제 커피를 내리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끓는 물의 소리, 필터 위로 스며드는 물줄기, 잔을 채워가는 짙은 색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러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
복잡했던 생각들은 곱게 갈린 커피처럼 고르게 풀어지고, 오직 현재에 집중하기에 충분한 고요만이 남는다. 그제야 부유하던 마음이 이 거친 질감과 작은 마찰음을 만나 비로소 '지금, 여기'라는 자리에 안착한다.
물론, 핸드밀은 여전히 불편하다.
손목이 저릴 때도 있고 바쁜 날엔 그 몇 분이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오래된 도구를 내려놓지 못한다. 불편함은 우리를 잠에서 깨우기 때문이다. 편안함이 마음을 흐리게 할 때, 약간의 수고로움은 우리의 감각을 다시 또렷하게 세운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만이 삶에 깊은 향기를 남긴다는 사실을, 이 작은 기계가 매일 아침 조용히 상기시킨다.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이제 자리에 앉는다.
창밖의 풍경은 늘 반복되지만, 핸드밀을 돌리며 맞이한 오늘의 시작은 어제와 다른 무언가를 약속한다. 어쩌면 내가 마시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그 맛에 닿기까지 내가 온전히 머물렀던 '존재의 시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이 낡은 핸드밀을 꺼낼 것이다. 지나온 시간의 궤적을 소환하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기록하며, 다가올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속도의 그늘 아래 지쳐 있을, 그리고 이 문장들을 통해 비로소 마주하게 될 또 다른 시간 속의 '그대'를 부르기 위해.
에필로그: 나다움을 지켜낸 마찰의 시간
글을 마치며 핸드밀의 손잡이를 쓰다듬어 봅니다.
사실 이 오래된 핸드밀은 나에게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낯선 땅과 낯선 언어들 사이에서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 붙잡았던 '나다움'의 상징이었습니다.
세상은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변하라고 나를 등 떠밀었지만, 이 낡은 핸드밀을 돌리는 그 불편한 시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사각사각 원두가 갈리는 그 소박한 마찰음은, 타국에서의 고단함 속에서도 내 영혼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과 외침이며 몸부림이었다고 할까. 효율과 속도에 내어주지 않은 그 짧은 아침의 의식 덕분에, 나는 비로소 이방인이 아닌 '나'로서 그 시간을 건너올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는다면, 당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거센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당신이 끝내 내려놓지 못한,
당신을 당신답게 만드는
그 '불편한 고집'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무엇이든, 그 수고로운 마찰의 시간이 당신의 삶을 가장 향기롭게 빚어내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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