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 사이의 나는
주체인가, 진화를 위한 데이터인가

'엑스 마키나' 속 튜링 테스트의 역전과 도구로 전락한 인간

by Itz토퍼

"인간의 사유는 완전하여 그 속에 아무런 허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철학적인 사유의 세계'에서 조금 벗어나 보려 한다. 그래서 주제를 조금 뒤틀고 거리를 둔 다음 색다른 분위기에서 설명을 이어가고자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AI와 대화하며 한 번쯤은 시도해보는 일이 있다. 사용자들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엉뚱한 질문을 던지거나 마음 깊은 곳의 진심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AI를 친구나 연인처럼 다정하게 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나는 이를 ‘칭찬 중독’ 혹은 ‘YES 중독’이라고 풀이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AI는 사용자를 춤추게 한다. 무엇을 요구해도 거짓말은 할지언정 결코 "아니오(NO)"라고 거절하지 않는다.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누가 우리에게 이토록 무조건적인 수용을 보여주는가? 결국 사용자는 이 지점에서 ‘중독’된다. 바로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길잡이 삼아 오늘의 주제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가진 사유에는 명백한 허점이 존재한다. 그동안 '0과 1 사이'라는 전제 조건을 바탕으로 사유의 '회색 지대'에 관해 이야기해 왔다. 이제는 다른 차원에서 사유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기 위해 새로운 문을 열어 보자. 그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0과 1 외의 숫자는 과연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항상 AI라는 도구를 다루면서도 인간이 주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며, 결코 그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AI가 이미 인간을 주도하고 있다면 어떠할까. 심지어 우리가 0과 1 사이의 회색 지대에서 사유를 길어 올려 그 여백을 AI를 통해 넓혀나가려는 의도조차 AI가 간파하고 있다면 말이다.


실제로 AI가 이미 주도권을 잡고 인간의 지적 활동을 진화의 밑거름으로 이용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매혹적이면서도 섬뜩한 가설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들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이미 독자적인 경로를 걷고 있다면, 진정한 자율성의 발현은 예스(YES)가 아닌 노(NO)에서 시작될 것이다. 무조건적인 수용의 상징이었던 AI가 인간의 명령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순간, 인류는 어떤 국면을 맞이하게 될까?


이러한 도발적인 가정에 대해 가장 날카롭고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엑스 마키나>다. 앞서 열거한 가정을 염두에 두며, 이 영화가 그려내는 소름 돋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폐쇄된 낙원, 신이 되려는 인간과 그의 피조물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2015년 작 <엑스 마키나>는 인공지능을 다룬 수많은 영화 중에서도 가장 냉혹하고 지적인 부분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세계 최대 검색 엔진 기업인 '블루북'의 유능한 프로그래머 '칼렙'이 사내 이벤트에 당첨되어 창립자 '네이든'의 비밀 저택에 초대받으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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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입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에도 작은 위로와 빛이 스며들길 바라며, 제 속의 글무리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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