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프게 써 내려간 격세지감의 연대기
겨울 방학을 맞이한 요즘 초등학생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처럼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과거담에 '라떼'라는 표현까지 빌려 가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는 드물다. 누군가는 잔소리라 싫다지만, 필자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현상을 바라본다.
그것은 바로 '격세지감(隔世之感)' 때문이다. 한자 그대로 풀면 "세월이 많이 지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뜻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각 세대가 겪어온 삶의 모습이 너무나 극명하게 차이 나기에, 서로의 경험이 마치 다른 행성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라떼 세대가 살았던 또 다른 행성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혹시 지금 식사 중이시라면 잠시 수저를 내려놓고 읽으시길 권한다.
오늘날의 아이들이 방학 숙제로 '쥐꼬리 5개 제출'이나 '파리 사체 수집'을 받아 든다면 어떨까? 아마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이나 괴담으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전, 대한민국 학교 현장에서 이것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교육적 과업'이었다.
“너무 거창한가?” 싶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어이없고 헛웃음이 나는 풍경이었지만,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는 '위생'을 지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비위생'을 감수해야 했던 서글픈 시대의 모순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쥐는 단순히 징그러운 동물이 아니라 식량을 축내고 전염병을 옮기는 '공공의 적 1호'였다. 정부는 '쥐 잡는 날'을 선포했고, 그 서슬 퍼런 정책의 최전선에는 영문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서 있었다. 아이들은 쥐를 잡아 증거물로 꼬리를 잘라 학교에 제출해야 했다. "쥐꼬리도 없다"는 말은 이 시절, 숙제를 해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아이들의 빈 손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쥐꼬리가 모자라 수수 이삭을 잘라 검은색을 칠해서 가짜 꼬리를 만들고, 암시장(?)에서 쥐꼬리를 돈 주고 사는 기묘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던 시절. 그야말로 '웃픈'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파리 잡기 숙제는 또 어떠했는가. 콜레라와 장티푸스를 막겠다는 대의명분 아래, 아이들은 틈만 나면 파리채를 들고 돌아다니며 성냥갑에 죽은 파리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전염병 매개체를 없애겠다는 교육적 목적은 훌륭했으나, 수집 과정은 참으로 비위생적이었다. 한 번은 파리 잡기가 너무 귀찮아서 성냥갑 가운데에 메뚜기를 잡아넣은 적이 있었다. 그걸 본 선생님 왈, “얌마, 니네 동네는 파리가 이렇게 크나? 아예 잠자리를 잡지 그랬나!” 결국 수업 시간 내내 화장실 뒤편을 서성거리며 '리빠똥(똥파리) 장군' 체포 작전을 수행하느라 바빴던 기억이 선하다.
위생 관념을 심어주겠다며 아이들에게 맨손으로 쥐꼬리를 만지게 하고, 파리 사체를 가방에 넣어 등교하게 했던 그 시절의 풍경은 그 ‘잡채’로 거대한 역설이었다. 병균을 옮기는 매개체를 직접 손으로 만져야만 '위생적인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모순된 현장이었으니, 그 방법으로 전염병이 얼마나 잡혔겠는가.
여기에 '채변 봉투'라는 정점을 찍으면 그 시절 위생 잔혹사는 완성된다. 기생충 박멸을 위해 전교생이 자신의 변을 봉투에 담아 제출해야 했던 날, 어쩌다 가방 속에서 봉투가 '자살 테러'라도 일으키면 교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채취를 못 한 녀석들은 더 가관이었다. 노트를 북북 찢어 들고 운동장 뒤편으로 가서 줄줄이 쭈그리고 앉아 즉석 처리에 나선다. 그래도 소식이 없으면 다급한 외침이 들린다. “친구야, 니 쌌나? 한 젓가락만 주라~!” 그렇게 빌려 낸 채취본에서 하필 회충이 많이 나오기라도 하면, 그 녀석은 교실 현장에서 회충약 한 줌을 먹어야 했다. 물 한 컵과 약 한 줌. 그 모습은 마치 임금 앞에 무릎 꿇고 사약을 받는 역적의 형상 같았다.
이제는 안주거리가 된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생존의 문제였다. 몸에 해로운 줄도 모르고 '이'를 잡겠다고 머리에 하얀 DDT 가루를 뒤집어쓰며 소독차 뒤를 쫓던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그 뒤에는 건강을 위해 독극물조차 감수해야 했던 무지의 시대상이 투영되어 있다.
물론 그 시절의 황당한 숙제들을 단순히 비웃을 수만은 없다. 그것은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한 톨의 곡식이라도 더 아끼고 공동체를 지켜내려 했던 절박한 몸부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 그 과정이 지독하게 비위생적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생 관념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던 시절"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 속에는, 그 무질서와 야만을 뚫고 오늘날의 청결한 세상을 만들어낸 세대의 애환이 녹아 있다. 쥐꼬리와 파리 사체를 검사받던 아이들이 자라나, 이제는 손 소독제를 상비하는 할배 할매가 되었다.
과거의 역설적인 숙제들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황당한 기록들은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하고도 씁쓸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
“그러니 너무 ‘라떼 타령’ 한다고 그러지 마라. 이 모든 게 사실 얼마 안 된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