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소식을 나르는 무지개의 전령, 아이리스
자욱한 안개 낀 숲, 누군가의 나지막한 음성이 또렷하게 울려오는군요.
“아이리스(Iris).”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마음 한편에 세 가지 풍경이 조용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메마른 땅 위에서 고고한 보랏빛으로 피어나는 붓꽃,
비 갠 뒤 하늘에 고요한 평화를 그려내는 무지개,
그리고 신들의 다정한 숨결을 모아 인간에게 전하는 전령의 여신.
이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지만, 단 하나의 변치 않는 약속을 건넵니다.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삶을 휘저어 놓을지라도, 그 폭풍우가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당신의 삶 위로 ‘기쁜 소식’이 찾아올 것이라는 여리면서도 굳은 약속 말입니다.
하지만 그대가 귀를 기울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약속이 단순한 말이 아니라 당신의 심장과 영혼 깊은 곳에서 잔잔한 설렘을 일으키는 파동으로 먼저 울려오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리스의 강인함은 그대가 볼 수 없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답니다.
대지가 꽁꽁 얼어붙어 생명의 흔적조차 지워진 듯한 혹독한 겨울, 아이리스의 뿌리는 차가운 대지 깊은 곳에서 시간의 침묵을 견뎌 냅니다. 겉으로는 생명이 멈춘 듯 보일지라도, 땅 아래에서 가장 먼저 봄을 깨우기 위해, 언젠가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생명의 에너지를 조용히 모으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느 날, 서릿발을 뚫고 가냘픈 허리를 세우며 솟아오르는 잎사귀. 그 모습은 어떤 시련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겠다는 숭고한 의지처럼 보인답니다.
우리가 ‘붓꽃’이라 부르는 이 꽃, 꽃봉오리가 마치 먹을 가득 머금은 붓과 닮았다 하여 그 고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붓이 하얀 종이 위에 삶의 무늬를 그려 나가듯, 아이리스는 삭막한 땅 위에 다시 시작될 생명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답니다. 가장 찬란한 보랏빛을 완성하기 위해서, 세월을 삼키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지금 당신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삶을 무겁게 적시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아이리스를 피워 내기 위해 당신이라는 대지가 스스로를 일구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녀의 꽃말인 ‘기쁜 소식’은 화려함 속에만 머무는 전유물이 아니랍니다.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하릴없이 고개를 떨군 순간, 당신의 발치에 핀 작은 꽃 하나가 그대의 눈물을 닦아 주며 건네는 다정한 안부와도 같답니다.
신화 속 여신 아이리스는 황금빛 날개를 펼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 인간의 세상으로 내려옵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마다 선명하게 남는 일곱 빛깔 무지개는 폭풍우가 끝났음을 알리는 평화의 이정표랍니다.
눈부신 햇살만으로 무지개를 만들 수 있을까요. 무지개란 차가운 빗줄기와 따스한 빛이 서로를 섞고 투과하는 찰나에만 허락되는 지고한 선물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나요.
고통이라는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질 때, 우리는 비로소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 둔 빛을 꺼내어 자신만의 무지개를 그려 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겪고 있는 그 아픔은 결코 당신을 쪼개고 조각으로 나누기만 하는 헛된 과정이 아니랍니다. 그것은 당신의 하늘에 더 짙고 선명한 무지개를 걸기 위해, 당신이 정성껏 모으고 있는 빛의 조각들이랍니다.
여신 아이리스가 그러했듯, 당신의 시련 또한 당신을 더 깊은 평온과 희망 찬 내일로 이끄는 든든한 다리가 되어 줄 겁니다.
삶의 계절이 긴 겨울의 한복판을 지날 때면 우리는 자꾸만 묻게 된답니다.
이 차가운 흙 아래 정말 무언가 살아 있기는 한 것인지, 저 두터운 먹구름 너머에 정말로 태양이 남아 있기는 한지 말입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잠시 시선을 돌려 보라고. 땅 위의 꽃에서 시작해 하늘의 무지개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응원하는 전령의 목소리로 시선을 옮겨 보라고 말입니다.
신화 속에서 아이리스는 단지 소식을 전하는 전령일 뿐 아니라, 잠든 존재를 깨우는 다정한 손길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잠의 신 히프노스의 동굴을 찾아가 깊은 잠에 빠진 이들을 조용히 흔들어 깨우곤 했지요.
오늘도 아이리스는 당신의 지친 마음을 가만히 두드립니다. 혹시 당신의 희망이 너무 힘겨워 잠시 잠들어 있다면, 아이리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 보세요. 무지개 여신이 당신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아 이렇게 전해 줄 것입니다.
“이제 비가 그쳤군요. 당신의 붓끝에는 이제 기쁨의 문장만이 쓰이리라 믿습니다.”
어둠 속에 홀로 있는 당신에게, 아이리스가 건네는 이 소박하지만 위대한 ‘기쁜 소식’이 따뜻하게 닿기를 바랍니다.
무지개는 이미 그대의 마음 한편에서 떠오를 준비를 모두 마쳤답니다. 조금만 더 숨을 고르고, 당신만이 가진 찬란한 빛을 세상에 온전히 펼쳐 보이시길 마음 다해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