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우물에서 길어 올린 사랑

상처를 끌어안고 운명을 사랑하는 방식

by Itz토퍼


“브런치스트(Brunchist) Itz토퍼의 스토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브런치스트(Brunchist)'에 관한 설명은 다음 글에 상세히 설명하도록 합니다.



본 발행글은 올 1월에 6부작으로 연재되었던 미니시리즈 '아모르 파티' 통합본입니다.

- 운명을 사랑하는 법: 아모르 파티(Amor Fati)


ⓒ 2023 Itz토퍼 Photography


마른 우물 속을 깊이, 더 깊이 파고 들어갔다.



한 길만 파면 언젠가 물이 터질 것이라 믿으며, 삶의 다른 가능성들은 ‘나중에’라는 이름으로 미뤄두고 땀 흘린 시간의 끝에서였다. 누구나 그러하듯, 기대라는 망상을 품고 환상 속 미래를 그리면서.


그러나 바닥에는 물 대신 메마른 흙만 남아 있었다. 더 두려운 것은 실패 그 자체보다, 우물 밖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조차 모른 채 너무 깊이 와버렸다는 사실이었다. 파란 하늘은 여전한데, 그 아래는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누구이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흔하디 흔한 철학적 질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공백뿐인 사유의 자리로 돌아왔다.


오랜 타국 생활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적응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나 자신과는 멀어져 있었다. 그때 떠오른 과거라는 기억 속으로 드러난 시커먼 물체. 왜 너니? 블랙 메모리.


구공탄 시절이다. 한때 저 녀석 때문에 응급실까지 실려 가서 생명의 바닥까지 갔었는데.


구멍이 적은 연탄은 강하게 타오르지만 금세 사라지고, 여러 개의 구멍을 가진 연탄은 은은하지만 오래 지속된다. 돌아보면 나는 하나의 구멍에만 모든 열을 집중해 온 삶을 살았다.


그러나 삶은 한 방향의 성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아주 단순투성이의 도리를 무시했으니. 다양한 숨구멍을 통해 공기를 들이고 내쉬듯, 균형 잡힌 온기가 필요한데. 왜 그때는 그걸 다르게 해석했을까. 청춘이라는 겉멋에 제대로 도취했었군.


ⓒ 2025 Itz토퍼 Photography




그렇게, 이 깨달음은 오늘의 사랑과 상처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동시에 고통을 경험하니까. 마치 사랑이라는 낭만의 대가처럼.


그래서 때로는 기억을 지워 버리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또 누군가라는 그대를 사랑하고 싶다. 하지만 정말 아픈 기억을 없애면 제대로 사랑하며 행복이라는 굴렁쇠를 굴리며 달릴 수 있을까.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는 바로 거기서 멈추고 다른 선택을 하라고 말한다. 고통을 제거하는 대신, 그것마저 내 삶으로 끌어안는 태도.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인정하라는 말.


다시 상처 입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사랑을 선택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더 깊이 살아가는 방식일까. 글쎄, 그럴지도 모른다.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사랑이니까.


하지만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우리를 끊임없이 옭아맨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스스로를 책망하며, 완벽하지 않으면 가치 없다고 스스로를 윽박지르지 않나. 그러나 알고 보면,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빈틈인걸.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 속에서 닮은 모습을 발견하고, 그때 비로소 마음을 여니까. 완벽을 향한 집착은 현재를 놓치게 만들고, 결국 무얼 해도 제대로 살지도 사랑하지도 못하게 할 뿐.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들, 그 또한 마찬가지.


무너지고 싶었던 기억들, 버티기조차 힘들었던 시간들은 단순한 실패일 뿐일까. 그건 끝까지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던 흔적일 뿐. 우리는 종종 혼자서만 버텨야 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 또한 삶을 지키는 방식이지 않은가.


부서진 틈 사이로 스며드는 온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걸.


물론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 함부로 사용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니체의 사상은 역사 속에서 왜곡되어 폭력의 논리로 악용되기도 했지 않은가. 그래서 누군가 아무리 좋다고 열변을 토해도 나는 맹신하기보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련다.


아모르 파티 역시 고통을 미화하는 구호가 아니라, 삶을 능동적으로 해석하려는 하나의 태도로 이해해야 하니까.


ⓒ 2024 Itz토퍼 Photography

결국 인생을 ‘랜덤 박스’처럼 받아들이면 편하지 않을까.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그 결과를 거부하지 않고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 내가 통제하지 못할 바에 운명처럼 끌어안아 버리자.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와도 그것을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 안에는 이미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 담겨 있다고 고집부리고 싶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마른 우물만을 바라보지 않으련다.


대신 내 안에 여러 개의 숨구멍을 뚫고, 다양한 방향으로 삶을 호흡하려 한다. 상처도, 실패도, 외로움도 모두 나를 이루는 요소로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아모르 파티란 결국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삶이며,

그렇기에 나는 이 삶을 사랑하련다.


내가 지금도 그대를 사랑하는 것처럼.

만일 다음 생이 있다 해도,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며.”



ⓒ 2021 Itz토퍼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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