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둘레햄을 위한 변호: 사고(思考)의 열역학적 비용에 대하여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강연 준비를 마치고 빵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진열대 앞에서, 평소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크림이 듬뿍 들어간 크림빵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집어 들었다.
참고로, 나는 어릴 적부터 자다가도 ‘빵’ 소리만 들으면 벌떡 일어날 정도의 빵돌이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먹는 빵은 ‘식빵’이다. 그냥 구운 식빵이면 충분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뽀송뽀송하게 갓 구워낸 식빵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무엇보다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빗나가기도 한다. 갑자기 단 것이 당길 때가 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크림 그것도 생크림이 듬뿍 들어간 녀석을 붙들고 있었다.
요즘 체중 조절을 한다며 운동 시간까지 조절하고 식단을 꼼꼼히 챙기던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조금 우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이건 물리학이야.”
누군가 들었다면 황당한 궤변이라며 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나의 허기 이면에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과 맞닿아 있는 어떤 물리적 필연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둘레햄으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변론을 시작하도록 한다.)
전력이 곧 국력인 시대
바야흐로 AI 시대다. 기술 패권의 승부처는 알고리즘의 정교함이나 데이터의 양을 넘어 '전력'이라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장벽으로 옮겨가고 있다. 막강한 제조 경쟁력에 국가 주도의 거대한 전력망 인프라까지 갖춘 중국이 AI 패권 경쟁에서 유리하다는 분석의 결정적 근거도 결국 '전기'다.
첨단 기술의 정점인 AI의 미래가 19세기 발명품인 전력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가득 채운 서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웅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수조 개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정교한 문장을 빚어낼 때, 그 이면에는 수만 톤의 냉각수로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 전기적 갈증이 존재한다. 국가들은 이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총성 없는 인프라 전쟁을 벌인다. 그래서 끊임없이 발전소를 짓고, 핵융합을 꿈꾸며, 전력망 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거창한 기계의 갈증이, 연구를 끝내고 빵집으로 달려가는 나의 허기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뇌는 생각보다 훨씬 게걸스럽다
입시 공부에 전념하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잔소리가 아니라 적절한 간식 타임이다.
인간의 뇌는 몸무게의 고작 2%를 차지하면서도 전체 에너지의 20%를 독식하는 탐욕스러운 장기다. 제 덩치에 비해 열 배나 많이 먹으니, 우리 몸에서 가장 '가성비 나쁜' 기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걸 굶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뇌라는 녀석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평상시에도, 전구 하나를 밝힐 정도의 전력을 쉬지 않고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순간은 어떻겠는가. 뇌는 즉각 내부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복잡한 문장을 엮고 미지의 원리를 탐구하는 동안, 뉴런들은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온을 펌프질 하며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다. 국가가 AI를 돌리기 위해 발전소를 풀가동하듯, 우리 몸도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 내부 발전소의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뇌는 이 사실을 주인에게 알리지 않은 채 조용하고 신속하게 연료를 태워버린다는 것이다.
열을 내는 것들에 대하여
데이터센터가 냉각 팬과 냉각수를 총동원해 달궈진 칩셋을 식히듯, 우리 몸도 뇌로 향하는 혈류량을 늘려 온도를 조절한다. 깊은 몰입 끝에 찾아오는 특유의 '머리가 뜨끈해지는 기분'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내 뉴런들이 풀가동되며 만들어낸 열역학적 결과물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뜨겁게 발열하는 물리적 행위다.
AI의 서버실이든 연구자의 책상 위든, 정보를 처리하는 곳에서는 예외 없이 열이 난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이토록 닮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우면서도, 어딘가 동병상련의 감정이 밀려온다.
그래서 빵이 먹고 싶었던 것이다
연구를 마친 뒤, 혹은 긴 글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서 찾아오는 그 '유별난 빵에 대한 갈망'은 내 몸이 보내는 가장 정직한 청구서다. 뇌의 유일한 연료는 포도당이다. 복잡한 사고를 처리하느라 연료통이 바닥난 뇌는 즉각적으로 탄수화물과 당분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의지력의 부족도, 단순한 식탐도 아니다. 거대 IT 기업들이 전력망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듯, 나 역시 무너진 에너지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갓 구운 크림빵'이라는 연료를 찾아 나선 것뿐이다. 나는 그저 내 몸이라는 국가의 핵심 인프라를 보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엔트로피는 공짜가 아니다
결국 인공지능의 거대한 전력 소비와 연구자의 서글픈 탄수화물 중독은 같은 물리적 이치를 공유한다. 무질서한 정보들 속에서 질서 있는 ‘답’을 끌어내려는 행위, 즉 혼란 속에서 구조를 찾아내는 작업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그 과정에는 언제나 에너지가 필요하다.
열역학 제2법칙은 기계에도 인간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우리는 정보를 처리할 때마다 에너지를 소비하고, 그 에너지는 결국 열로 흩어진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에너지를 채워 넣어야 한다.
오늘도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짜며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면, 그것은 단순한 지적 활동이 아니었다. 몸 안의 작은 발전소를 한계치까지 가동한, 지극히 육체적인 투쟁이었다.
그러니 연구 끝에 집어 드는 달콤한 빵 한 덩이를 죄책감 대신 경건함으로 마주해도 좋다. 그것은 나의 데이터뱅크를 다시 가동하기 위한 가장 맛있는 충전 방식이자, 나만의 작고 소박한 전력 수급 대책이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생크림 빵을 집어 든 것은 의지의 실패가 아니라 열역학의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