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라는 만능 언어

말 한마디에 담긴 마음의 층위

by Itz토퍼

브런치북 『라떼 한 잔 하실래요?』에서는 ‘상관없어’라는 말에 담긴, 배려와 방관 사이의 사랑을 제 딸 보배단지와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 모두의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든 한 단어, ‘아무거나’가 지닌 두 얼굴과 그 안에 담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세상에는 참 묘한 단어들이 있습니다. 단 한 마디로 수만 가지 상황을 대신하는 ‘만능 언어’ 같은 말들이죠. 중국어에는 그런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随便(suíbiàn, 쉐이-삐엔).” 직역하면,

“편한 대로”,“아무거나”, “마음대로”라는 뜻입니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도, 상대에게 선택을 위임할 때도, 때로는 대답하기 싫거나 귀찮을 때도, 혹은 부드러운 허락의 의미로도 쓰입니다.


“오늘 뭐 먹을까?”

“Sui-bian(쉐이-삐엔).”


이 짧은 음절 안에는 “아무거나 좋아”, “나는 상관없어”, “네가 정해줘”라는 여러 갈래의 마음이 한데 섞여 흐릅니다. 영어의 “Whatever”나 “Up to you”와도 결을 같이하지만, 우리말의 “아무거나”만큼 그 온도 차가 극명한 단어도 드뭅니다.


“응, 아무거나.”


흥미로운 점은 이 말이 단순히 선택을 미루는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누구의 입술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누구의 귀에 닿느냐에 따라 “아무거나”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어떤 “아무거나”는 다정한 배려이고,

어떤 “아무거나”는 단단한 신뢰이며,

어떤 “아무거나”는 싸늘한 무심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아무거나”는 선택은 내려놓고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하기도 하죠.

하지만 어떤 “아무거나”는 완전한 자유를 선물하고픈 마음입니다.

그리고 어떤 “아무거나”는 ‘너’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뜻이랍니다.


인간관계의 수많은 결이 이 짧은 말속에 숨어 있군요. 어쩌면 진심이란 긴 설명보다 이런 짧은 단어 속에 더 조용하게 깃드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이 편리한 만능 언어 속에 숨겨진 여섯 가지 마음의 얼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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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입니다. 오늘도 작은 위로와 사유의 빛을 담아, 나만의 이야기를 조용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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