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의 영혼과 금색 그릇의 부조화
오늘, 비록 시한부지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란과 미국이 2주간 휴전하기로 했고, 호르무즈 해협 또한 개방된다는 소식이다. 안심은 되지만, 트럼프가 언제 또다시 특유의 '트롬포(Trompo)'식 행보를 보이거나 'TACO' 패턴으로 돌변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트럼프가 왜 이토록 ‘타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지, 그 기묘한 미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멕시코 길거리의 어느 모퉁이, 연기 자욱한 철판 위에서 갓 구워진 토르티야는 인류가 발명한 가장 완벽한 '포용의 그릇'이 아닐까 싶다. 처음 이 맛을 만나는 순간, 나는 깊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옥수수 가루 특유의 구수한 향이 코끝을 스치면, 그 위로 툭툭 얹어진 양념 고기와 고수, 양파가 시각을 자극한다.
특히 화룡점정으로 뿌려진 살사 소스는 우리네 고추장과는 또 다른 결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혀끝을 톡 쏘는 산뜻한 산미와 뒤따라 퍼지는 알싸한 매운맛이 겹겹이 번지며,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감각을 번쩍 깨운다. 제대로 만들어진 타코는 겸손하면서도 강렬하다. 손가락 끝에 기름기가 묻고 소스가 턱을 타고 흐를지언정,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가며 바쁘게 해치우는 그 맛은 정직하며 숨길 것이 없다.
그런데 가끔 이 타코의 정직한 영혼이 '정치적 연출'이라는 도마 위에 올라가 난도질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그것도 세계적인 ‘강대국’의 대통령에 의해서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2016년 5월 5일,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트럼프 타워 사무실에서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운 채 '타코 볼(Taco Bowl)'을 앞에 두고 찍은 사진이다. "히스패닉을 사랑한다(I love Hispanics!)"라는 선언과 함께 등장한 그 음식은 사실 정통 멕시코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멕시코인들이 수천 년간 주식으로 삼아온 부드럽고 소박한 '옥수수 토르티야' 대신, 거대하게 부풀려 튀겨낸 '밀가루 바구니'를 그릇 삼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에디블 볼(Edible Bowl)'이라 불리는 튀긴 그릇은 그 자체로 트럼프의 정치를 상징하는 듯하다. 겉은 바삭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기름지며, 정작 타코의 본질인 토르티야의 구수한 풍미는 온데간데없다. 본질보다는 자극적인 쇼맨십에, 깊은 이해보다는 가공된 이미지에 집중하는 그의 스타일이 그 거대한 튀김 그릇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타코의 세계에 그의 이름과 기묘하게 닮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다. 멕시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타코 알 파스토르'의 고기를 굽는 수직 회전 구이기는 스페인어로 '트롬포(Trompo)'라고 불린다.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며 겉면을 바삭하게 익혀내는 이 '트롬포'는 타코의 심장과도 같다.
그러나 이 트롬포에는 트럼프가 외면하고 싶었을 역사가 새겨져 있다. 타코 알 파스토르는 19세기말, 오스만 제국의 혼란을 피해 멕시코로 건너온 레바논 이민자들이 가져온 샤와르마(Shawarma) 기법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민자를 추방하겠다고 선언한 이가 이민자의 손에서 빚어진 기술(트롬포)로 만든 음식을 앞에 두고 사랑을 외친 셈이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하지만 최근 들어 '타코'라는 단어는 그에게 더욱 뼈아픈 수식어가 되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로버트 암스트롱은 트럼프 특유의 변덕스러운 정책 패턴을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라고 명명했다. 강경한 관세와 위협으로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다가도, 경제적 압박이 거세지면 슬그머니 물러서는 그의 행보를 비꼰 것이다. 암스트롱은 국경 문제에 집착하는 대통령에게 '멕시코적 풍미'를 더해 이 표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본인은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 'TACO 이론'을 전해 듣고 "불쾌한 질문이다, 그것은 협상(Negotiation)이다"라며 격분했다. 그러나 진정한 협상이란 본래 뜨거운 압박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버티며, 시간을 들여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는 인내의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협상'은 타코 알 파스토르의 고기처럼 불길 위에서 은근하게 익어가며 깊은 풍미를 더하는 정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금방 방향을 바꿔버리는 즉흥적인 움직임에 가깝다. 겉으로는 강한 불꽃을 내세우며 위협하지만, 정작 그 열을 끝까지 견딜 끈기가 없으니 결국 깊은 맛 대신 공허한 자극만 남기는 꼴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타코는 결코 금박을 입히거나 엄지를 치켜세운다고 해서 더 맛있어지지 않는다. 타코의 위대함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는 그 '혼돈 속의 질서'에 있다. 장벽을 세워 사람을 가르고, 화려한 그릇으로 본질을 덮으려 하며, 위협 뒤에 비겁하게 물러서는 이들에게 타코는 영원히 그 진실한 맛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타코를 맛보고 싶다면 넥타이를 풀고 금색 책상을 떠나, 연기 자욱한 시장통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소스가 묻은 손을 닦으며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맛'이 있고, 소셜 미디어의 짧은 문구 하나에 다 담아낼 수 없는 깊은 '역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트럼프의 타코 볼은 'TACO'라는 조롱 섞인 이름으로 역사에 남을지 모르나, 레바논 이민자의 손에서 멕시코인의 미각으로 전해진 진정한 트롬포의 열기는 오늘도 국경 너머 사람들의 배와 마음을 든든하게 채우고 있다.